어려울 때 힘과 용기를 주신 하나님 은혜로 이 길을 달려와

박영례 권사(3) / 덕소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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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제과 공장을 지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장 건물에 함석지붕을 올리기 위해 함석을 운반하는데, 제가 함석을 내리다가 잘못하여 그만 발등을 찍고 말았습니다. 무거운 함석 뭉치에 찍혀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가고 순식간에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저는 심한 통증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 건설대원이 저를 업고 하나님께로 급히 달려가자, 하나님께서는 저를 바닥에 내려놓으라 하신 후 “쉭! 쉭!” 하시며 한참 동안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다쳤을 때부터 줄곧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축복을 마치신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하실 때 저도 모르게 눈을 뜨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놀랍게도 발등의 피가 멈춘 것은 물론이고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처 부위에 축복 솜을 붙여 주시며 걸어가라 하셔서 저는 그대로 걸어서 숙소까지 왔습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후로 통증이 말끔히 사라지고 전혀 아프지 않아서 예전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생명물로 적신 축복 솜을 상처에 붙여 주었는데, 뼈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심했던 상처는 차츰차츰 새살이 돋아나 작은 흉터만 남기고 잘 아물었습니다.

실수로 함석뭉치를 발등에 떨어뜨려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솟구치는데
하나님께 축복 받은 즉시 피가 멎고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소사신앙촌 건설이 마무리된 후 저는 신앙촌 간장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소비조합을 하며 저에게는 마음속으로 다짐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의 주택을 구입하여 서울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는 약수동전도관에 다니셨는데 온 가족이 소사신앙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처음 장사를 나가던 날 신앙촌 간장을 가지고 소사신앙촌 주변의 마을을 다녀 보았습니다. “신앙촌에서 간장이 나왔어요. 한번 맛보세요.” 하며 조금씩 주었더니 “무슨 간장이 이렇게 맛있나?” “밥 비벼 먹으면 좋겠네.” 하면서 너도 나도 간장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한나절이 가기도 전에 간장을 전부 판매하게 되었으며, 날이 갈수록 소문이 퍼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앙촌 간장을 찾았습니다. 제가 무어라 설명하기도 전에 앞다투어 간장을 사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루하루 부지런히 판매하며 알뜰하게 생활했더니 소비조합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소사신앙촌의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소사신앙촌에 입주하던 날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어머니와 동생들이 서울 약수동에서 초라하고 허술한 집에 살면서 고생하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는데, 신앙촌에 입주하고 나서부터 아름다운 신앙촌의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에서 편안히 지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신앙촌 제품이라면 어딜 가나 알아주고 인정해 주니 긍지와 자부심 갖고 판매
소비조합 활동으로 신앙의 터전을 마련해주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를 깨닫게 돼

1962년 덕소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도 저는 계속 소비조합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덕소신앙촌 공장에서 생산하는 이불과 엑슬란 내복 등이 큰 인기를 끌어서 서울을 오가며 바쁘게 판매했습니다. 신앙촌 제품이라고 하면 어디를 가든지 알아주고 인정해 주니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판매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여섯 식구의 생계를 해결하고 동생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습니다. 동생들이 신앙촌의 학교에 다니며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저는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소비조합이라는 길을 주셔서 걱정 없이 살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신앙의 터전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소비조합으로 활동하던 저는 2003년부터 덕소신앙촌의 장례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릴 때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는 일을 보조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입관예배에 참석하여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모습을 많이 보았으나, 제가 직접 시신을 씻긴다고 생각하니 떨리고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명물로 시신을 씻길 때 머릿속에 시신이라는 생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살아 계신 분을 깨끗이 목욕시켜 드리는 것처럼 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어쩌면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시신을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 뽀얗고 곱게 핀 모습을 볼 때면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시신을 생명물로 씻긴 후에는 얼굴에 있던 주름살이 곱게 펴지고
입술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어 너무나 곱게 피어 단잠을 자는 듯해
그 모습을 보며 은혜로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 드려

2005년 6월에는 저와 가깝게 지냈던 박덕이 권사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박 권사님은 저의 권유로 이만제단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막내아들이 심한 경기(驚氣)를 했을 때 생명물로 낫는 것을 보고 열심히 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소사와 덕소신앙촌에 입주하여 소비조합으로 활동하면서 저와 수십 년을 함께한 분이었습니다. 입관예배 때 저는 고인을 씻겨 드리면서 생전의 모습이 눈앞에 스쳐 갔습니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으로 열심히 소비조합을 하시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시신을 생명물로 씻긴 후에는 얼굴에 있던 주름살이 펴지고 입술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어 너무나 곱게 피었습니다. 단잠을 주무시는 듯 편안한 고인을 보면서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뵙고 은혜를 받은 날부터 한없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제 마음을 포근히 감싸 주셨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귀한 은혜로 함께해 주셨기에 구원의 길을 따라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고 은혜를 간직하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지만, 하루하루를 죄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깨우쳐 주신 말씀대로 맑고 성결하게 살아서 그날에 구원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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