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비방에 ‘전도관은 어떤 곳일까’ 호기심 생겨

김엄정 승사(1) / 영덕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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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1935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집 안에 삼신(三神)을 모시고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었던 저희 집은 교회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어른들을 따라 장로교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 마음에 큰 놀라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영원히 고통을 받는 지옥이 참으로 무섭게 느껴졌으며 나도 아름다운 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열아홉 살 무렵부터 동네에 있는 원항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성가대와 주일학교 반사 등의 교회 활동에 재미를 붙여서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교회에서 운영하는 성경학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누구든지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라는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그렇다면 나도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구원에 관한 고민은 차츰차츰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목사가 예배 시간마다 박 장로님이 이단이라고 목청을 높이니
오히려 한번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
동생을 따라 광안리 기도처로 향해

그러던 1956년 11월, 제 나이 스물두 살 되던 해였습니다. 그때 가을걷이가 한창이라 집 마당에서 타작을 하는데, 볏짚을 나르던 중에 오른쪽 눈에 무엇이 들어간 것처럼 따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뭐가 들어갔나?’ 하며 눈을 비볐는데 금세 눈동자에 빨갛게 핏발이 섰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눈두덩이 부어올랐으며 눈의 흰자위에서 작은 살점 같은 것이 솟아올라 점점 눈동자를 덮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동네 의사를 찾아가서 주사를 맞고 한의원에서 침도 맞았지만 오히려 증상이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눈동자에 솟아오른 작은 살점 같은 것이 차츰차츰 눈 전체를 덮으면서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눈두덩이 퉁퉁 부어서 안대를 끼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네 의사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되겠다면서 대구의 유명한 안과 병원에 소개장을 써 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결혼 날짜를 잡아 두고 혼수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눈이 아픈 바람에 혼수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산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보를 쳐서 집에 돌아와 준비를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답장에는 뜻밖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습니다. 부산 광안리에서 장로교회에 다녔던 동생은 그 교회의 최 집사라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 집사는 폐병 3기로 병원에서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했으나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폐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들것에 누운 채로 집회에 갔던 최 집사가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돌아오자 교회가 발칵 뒤집혔으며 전 교인이 앞다투어 박 장로님의 집회에 몰려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박 장로님이 부산에 ‘전도관’을 세우셔서 동생은 거기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언니도 박 장로님께 은혜를 받으면 병이 나을 거야.” 하며 부산전도관에 와 보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로교회에서 ‘박 장로는 이단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동생의 간곡한 권유가 크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기도처에 들어서면서 향기로운 냄새가 바람같이 지나가는데
‘이 새벽에 누가 화장을 하고 왔나?’하며 살펴봤지만 그런 사람 없어
비로소 은혜를 받으면 죄타는 냄새에 이어 성신의 향취를 맡는다는 말이 떠올라
‘전도관에 확실히 뭔가 있기는 있나보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다녔던 원항 장로교회의 목사는 예배 시간에 “박태선 장로는 이단이니 절대 박 장로의 부흥집회에 가면 안 됩니다. 박 장로는 집회에서 찬송을 부를 때 손뼉을 치고 성경에 없는 행동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저는 동생의 편지를 받고서도 ‘내가 왜 이단에게 가겠어?’ 하며 부산전도관에 가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술을 받기 위해 대구에 가려고 준비하면서 동생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최 집사라는 사람은 병원에서도 못 고친 병이었는데 박 장로님께 은혜를 받고 깨끗이 나았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목사가 예배 시간마다 박 장로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단이라고 목청을 높이니 오히려 한번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동생 얘기를 들어 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무조건 가지 말라고 할까? 전도관에 가서 직접 알아보고 싶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저는 부산에 잠시 들렀다가 대구의 안과 병원에 가기로 하고 어머니와 같이 부산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생을 따라 처음으로 ‘광안리기도처’에 가서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은 가정집을 예배실로 단장하여 인근의 전도관 교인들이 새벽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동생은 “은혜를 받으면 언니 눈도 씻은 듯이 나을 거야.”라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지만, 저는 ‘눈은 수술 받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전도관에서 눈이 나을 거라는 기대는 별로 없었습니다. 눈이 낫기를 바라는 것보다 ‘전도관이 어떤 곳일까?’ 하며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기도처에 간 날 교인들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특히 찬송을 부를 때 손뼉을 치는 것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듣던 대로 손뼉을 치는구나. 경건한 예배 시간에 손뼉을 치다니 진짜 이단이 아닌가?’ 하며 눈살을 찌푸린 채로 그날 예배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기도처 마당에 들어서는데, 순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를 듯이 맡아졌습니다. 머리카락이 타는 것처럼 지독한 냄새가 진동하여 ‘뭘 태우나?’ 하면서 마당을 둘러봤지만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다음 날에는 기도처에 들어설 때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삭-’ 하며 바람같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벽에 누가 화장을 하고 왔나?’ 하며 교인들을 살펴봤지만 강하게 진동하던 그 향기는 어느 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좋은 향기가 바람처럼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때 저는 ‘은혜를 받으면 죄 타는 냄새를 맡거나 아주 좋은 성신의 향취를 맡기도 한다.’라고 했던 동생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 이것이 은혜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장로교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못 들어 봤는데……. 전도관에 확실히 뭔가 있기는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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