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더 쉬워요
김영배 승사 / 전농교회어려서 시골에 살면서도 교회에 다니고 싶었습니다. 열대여섯 살 때 서울에 올라와 안집 아주머니가 같이 교회에 가자고 하셔서 따라간 곳이 전도관이었습니다. 2살 위의 안집 언니 따라 일요일이면 마포의 이만제단에 가서 예배 드리면 기뻤습니다. 내세울 만한 은혜 체험은 없지만 교회에 다니면 기쁨이 솟았습니다. 처음에는 교회면 다 같은 줄 알았는데 차츰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나님이 더욱 깨달아지고 “세상에는 아무데도 구원 없고, 하나님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는 말씀에 ‘내가 참 잘 왔다. 다행이다. 어찌하여 내가 이 복을 받는가!’라는 마음이 들며 감사했습니다.
20대 때 직장에 다니며 신앙촌 물건을 소개했습니다. 말주변도 없고, 그저 뭐 뭐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신앙촌 물건은 좋으니까’라며 잘 사갔습니다. 때로 자신들이 필요한 제품을 부탁하면 가져다주고 월급날 되면 수금하고 지냈는데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촌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40년 전 서른 한 살 때였습니다.
지금이야 운전을 안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힘들지만 그때는 거의 버스로 다니며 물건을 배달했습니다. 머리에 이고 양 손에도 보따리를 들고 다녔습니다. 버스에 타면 사람보다 짐이 더 많다고 기사가 한 마디씩 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간장이라도 가져다 달라면 신이 나서 또 버스를 타고 배달을 갔습니다.
그때 소비조합을 하시는 분들은 덕소 소사 권사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분들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지금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이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정확하게 하면서 뿌려놓은 것이 있어, 지금도 신앙촌 아줌마는 믿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분들이 표본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은 붙잡으면 힘껏 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잠시도 쉬지 않고, 아침에 눈 뜨면 그때부터 밤까지 한 집이라도 더 방문하며 있는 노력을 다했습니다. 꾀피우지 않고 해왔습니다.
수많은 예배에 참석하며 다른 말씀 다 잊어도 죽어도 죄 안 지어야 한다는 그 말씀만 생각합니다. 소비조합을 하며 따라온 시간, 하나님을 따라가기에 더욱 좋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에 따라, 어떤 모임이 있어도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으니 후다닥 가기 편했습니다. 앞에서 이끄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더 쉬웠습니다. 앞으로도 순종하며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