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서운함

김순애 권사 / LA 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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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김순애 권사 / LA 교회

어려서 목소리도 크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곧잘 불렀던 저는 국민학교 음악시험에 다른 친구가 부르는 찬송가를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듣기가 참 좋았습니다. 어디서 그런 노래를 배웠냐고 물으니까 나만 따라오라고 해서 그 친구를 따라 면소재지까지 10리를 걸어서 교회에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동네 친구와 꼬마들도 모아서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린 걸음에 10리면 꽤 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이 있는 전북 임실군 신평면 원철리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10리씩 걸어가지 않아도 되었고, 교회 곧 전도관에서 배우는 찬송가 ‘천년성 거룩한 땅’도 재미있었습니다. 우리 마을에 제일 먼저 선 교회가 전도관이었습니다.

동네에 장례가 나면 초상집 앞을 구역질이 나서 지나가지도 못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셔서 전도관식으로 장례를 치루고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자 시신이 그대로 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신이 있는 방에서 예배도 드리고 밥도 먹었습니다. 시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편함보다 마음에는 평안함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새벽예배도 안 빠지며 열심히 다녔는데, 천도교를 믿는 외삼촌이 조선종교를 믿어야지 서양종교를 믿냐며 전도관에 나가지 못하게 하셨고, 외삼촌의 신세를 지고 있던 어머니는 전도관에 나가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대가 심해질수록 마음은 더 간절해졌습니다. 예배 시간이면 전도관 문 앞을 지키는 어머니의 눈길을 피해 다녔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제가 안 보이면 발길을 돌리는 어머니를 확인하고 예배실에 들어가느라 맨 앞 자리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어느날인가 하나님께서 전주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때 처음 하나님을 뵈면서 예배 시간 내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를 마치시고 곧 떠나가시는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지금 LA에서 신앙촌에 오려면 적어도 세 달 전부터 비행기 표를 예매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왔다가 돌아 갈 때면 또 그렇게 서운합니다.

새댁 시절 처음 신앙촌 물건을 판매하며 입도 떼기 어려워했는데, 지금 미국에서 제 주위의 많은 신앙촌 마니아들에게 믿을만한 데는 신앙촌 것밖에는 없다란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기쁨과 믿음을 주는 신앙촌을 열심히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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