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9)

대구집회(1955.9.30.~10.6.)
발행일 발행호수 2156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인천집회(1955.9.16~22.)가 끝나고 1주일 뒤 대구에서 하나님의 집회가 열린다.대구에서는 6월에 1차로 집회가 열렸었는데 9월에 두 번째로 집회가 열리게 된것이다.이번에도 집회 장소는 칠성동 천변 곧 경북대 앞 사장이었다.
 
지난 6월에 찾은 적이 있던 대구 칠성동 천변, 그 당시 신문광고에서 보이는 경북대 앞 사장을 또 찾아갔다. 집회가 열렸던 기간(9.30~10.6.)인 지난 4일 축복일 예배를 마치고 곧장 대구로 향했다.
 
당시 집회에 참석했다는 허두생권사(82. 대구교회)와 함께 그 자리를 찾았다. “그 때 장로교 천우교회에 다녔는데, 교회를 새로 지으려고 하고 있었어요. 교회 짓는데 돈이 잘 걷히지 않자, 어떤 장로님이 ‘불의 사자 박태선장로님이란 분이 집회를 하시는데 그 분 집회가 은혜롭다고 하니 그 분을 부흥강사로 모시고 집회를 합시다.’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집회를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집회를 하게 되었어요.”
 
영남일보에 난 “대구시민 심령 부흥대회” 광고 주최란의 ‘대구천우교회’를 보고 대구천우교회를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어, 없어진 교회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허권사의 말이 천우교회가 침산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지 않는가. 찾아보니 1952년부터 58년까지 천우교회였고, 천일교회로 바꿨다가,1965년부터 침산제일교회로 교회 이름을 바꾸었다. 우리가 찾아간 집회가 열렸던 그 자리에서 아주 가까이 도로로 올라만 오면 침산제일교회가 위치해 있었다.
 
그 교회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집회에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천우교회가 성전건축에 심한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교회에 박태선장로의 부흥회 소식이 들려왔다. 박태선장로는 당시 서울 남산과 한강변 백사장집회를 통해 큰 성황을 이루면서 부흥사로서의 명성을 얻고 안동 백사장에 내려와 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천우교회 장로들이 나에게 찾아와 그를 초청하여 대구에서 대집회를 주최하고 연보를 받아 성전건축 자금을 마련하자고 건의하면서, 목사님이 안동에 가서 교섭을 해 보라고 했다.
 
본인은 안동에 가서 박태선장로의 집회를 관리하던 총무단을 만났다. 마침 총무단 가운데는 권영호, 장덕호 목사 등 본인과 평소 잘 아는 목사들이 있었다. 그래서 대구집회를 천우교회가 주최하는데 허락을 받았다.” (『침산제일교회 50년사』 101쪽 김길순목사 회고)안동집회가 열린 것이 5월 12일부터 19일까지였다. 그 때 벌써 가서 잡은 약속이 9월 30일에야 이루어졌으니, 하나님의 일정이 얼마나 빡빡했는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계속해서 그들의 입을 빌어 당시 대구집회의 분위기를 살펴본다.
 
“박장로쪽과 교섭을 하자 그쪽에서도 좋다는 회신이 왔다. 그런데 교회가 좁으니 하천에다 천막을 치고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부흥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박장로에게서 향기가 나며 하늘에서 번개 같은 불이 비쳐졌다. 그가 쓴 손수건을 몸에 얹으면 병이 낫는다는 등의 소문이 퍼지면서 그야말로 부흥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간증을 통해 박태선장로의 기적술을 말할 때는 청중들이 열광하는 상태였다.
 
아무튼 부흥회는 대성황리에 마쳤다.” (앞의 책 100쪽 박영훈목사 회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표현 하지 못하지만 그들도 그 은혜를 다 체험했던 모양이다. 하나님의 안수를 통해 병자들이 치유되는 것을 기적술이라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그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원화권사(76. 서울동작교회)는 태어난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딸이 한쪽 팔을 만지기만 해도 금방 어떻게 될 것 같이 울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관절에 고름이 많이 낀 상태로 오랜 치료를 요하는 관절염이란 진단을 받게 된다.
 
고모님으로부터 “칠성동 백사장에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가 열리고 있는 중인데, 그 집회에 참석한 많은 병자들이 나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혹시 나을지도 모르니 같이 가보자.”는 말에 집회에 참석하게 된다.
 
“얼마 후 안수 하시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안수해주셨는데, 제가 안수를 받은 후 저희 아이도 해 달라고 아이의 머리를 갖다대니 탁 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안수를 받고난 후 아이는 아무리 팔을 만져도 울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조권사는 진단을 받았던 안동 영남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아이를 보이니 괜찮은 것 같다며 신기해 하였고, 아이는 그 때 이후 완전히 낫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6월의 집회에 이어 두번째 집회에도 참석한 홍영의권사(91. 기장신앙촌)는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은혜를 받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샘솟듯 솟구쳐 올랐고 입에서는 찬송이 쉴새 없이 터져나왔습니다.”라고 그 때를 회고했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