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가 본 돈의 철학
원유한 / 동국대 명예교수, 문학박사흔히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고 한다. 돈이란 모든 사람이 갖기를 원하는 것이지만, 자기가 가진 돈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속담에 돈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돈이라 한다 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돈을 가리켜 샘물처럼 솟아 쉬지 않고 흐르는 보배라 했다. 사백년 전 조선조 중기의 실학자 지봉(芝峰) 이수광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지름길이 돈을 만들어 쓰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현실은 돌고 돌아야 할 돈이 본래의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 등 심각한 사회경제적 폐단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요한 원인이 천문학적인 거액의 돈이 토지에 묻히고 호화 저택에 갇히고 권좌 밑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라던가. 삼백년 전 실학자 농재(農齋) 이익(李翊)은 돈의 심각한 폐단을 지적하면서 돈은 ‘백해무일익’(百害無一益)한 것이라 하였다. 그는 돈의 여러 가지 폐단 중에서도 돈이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조장한다는 점을 가장 심각한 폐단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익이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돈은 적게 가졌다는 데 문제가 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고루 가질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서양 사람들은 돈의 가치 내지 그 역할을 흔히 노예와 그 주인에 비유해 말한다고 한다. 돈은 최선의 노예이지만, 그것이 주인이 되면 최악의 주인이 된다고. 사람이 주인이 되어 돈을 노예처럼 부려야지 돈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다. 백오십년 전 정조 때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은 사람들이 돈을 지배할 수 없게 될 때 일어나는 폐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돈 때문에 혈육간에 서로 원수가 되고 남편과 아내가 절개를 잃게 되고 장사꾼은 다투어 살인하게 되며 양반은 돈으로 명예를 얻는다.”
요즘 돈의 욕망에 사로잡혀 엄중한 사회적 심판을 받게 된 내로라하던 지도층 인사들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며 인생의 허무, 아니 역사의 비정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흔히 남을 위해 이타적으로 쓰이는 돈의 액수는 그 사회의 성숙도나 의식수준과 비례한다고 한다. 보다 본질적 차원에서 말하자면, 이타적 목적으로 쓰이는 돈의 액수는 바로 그 사회의 봉사지수 내지 사랑지수와 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떳떳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고, 또한 얼마만큼의 돈을 이웃과 사회를 위해 이타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