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화폐개혁 실패할 수밖에

김근식 /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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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

17년 만에 단행된 북한의 전격적인 화폐개혁은 시장 세력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구권과 신권을 100대 1로 교환하면서 교환한도를 정해놓고 일정액을 초과하는 기존화폐를 못쓰게 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은행이나 저금소에 저축하라고 권유하지만 정상적인 은행제도가 미비한 북한에서 막대한 현금을 떳떳이 은행에 맡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부정부패와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등으로 축재한 기업 간부나 당관료들은 경제적 손실을 각오하고 쌓아놓은 현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확산을 틈타 막대한 부를 형성한 신흥 시장세력 역시 대놓고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아깝지만 현금보유액의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번 화폐개혁의 핵심 의도는 그래서 시장세력과 이에 결탁한 경제부패 세력에 대한 정치적 타격이자 경고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번 화폐개혁은 2002년 7.1 조치 이후 급성장한 이른바 ‘시장세력’을 통제하고 시장의 확산을 제어하려는 정치적 경고의 의미가 지배적이다. 그동안 소수의 대형 ‘돈주’들은 힘있는 권력기관을 끼고 엄청난 부를 형성했다. 막대한 현금이 동원되고 유통되었다. 국가 통제의 계획경제를 위협하는 이들 시장세력의 성장은 더 이상 묵과하기 힘들게 되었다. 당국은 시장을 국가 통제하에 두기 위해 다양한 보수적 조치를 취했고 최근에는 수입품과 공산품의 유통을 제한하고 50대 이상 여성에게만 장사를 허용하는 등 보다 통제적인 정책을 시도했지만 별효과가 없었다. 결국 전격적인 화폐개혁을 통해 신흥 시장 세력과 시장화된 부패관료 세력을 제압하고 시장에 대한 계획의 우위를 재확인함으로써 국가의 정치적 통제를 입증하려 한 것이다.
이번 화폐개혁과 관련해 우리는 북한의 양극화 문제를 놓쳐서는 안된다. 계획경제가 무력화되고 국가의 배급망이 형해화된 상황에서 지금 북한은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북한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돈만 있으면 입당과 김일성대학 진학이 가능하고 심지어 교화소나 군대에서도 사람을 빼올 수 있는 정도가 되고 있다. 평양과 기타 지역, 도시와 농촌 그리고 국경과 산간내륙 간의 불균형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북이 시장세력을 타격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한 실제의 정치적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인플레 확산과 물가 급등을 잡으려는 경제적 의도도 반영되었지만 실제 성과 측면에서 보면 급작스런 화폐교환만으로 경제 위기를 해소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구화폐 대신 신화폐를 통용시키고 새로 책정한 물가와 임금을 국가가 제시하겠지만 이를 통해 인플레를 잡을 수 없음은 북한 당국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인플레의 근본원인인 공급 부족과 생필품난 및 원자재난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 외과적인 화폐개혁만으로 물가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150일 전투에 이은 100일 전투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부예비가 바닥난 상태에서 북한은 더 이상 계획경제 복원론에 기댈 수 없다. 이제 외부지원과 자원투입 없이 경제회생은 불가능하다. 결국 북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국제사회에 정상적으로 편입됨으로써 빈곤과 양극화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외부로부터의 밧줄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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