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62주년의 세계사적 의미

강규형 /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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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형 /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얼마 전 끝난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한국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전 월드컵,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에서와 똑같은 열정이 넘쳐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과 폄훼가 난무한다. 이러한 이율배반(二律背反)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을까?

이러한 모순의 뿌리는 1948년 건국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할 것 같다. 건국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역사관의 혼란을 여실히 보여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월 15일은 감격적인 광복절이자 역사적인 건국절의 의미를 공히 갖고 있는 날이다. 또한 불행한 분단 65주년이기도 한 날이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폄훼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의 날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여러 선각자들의 노력과 투쟁이라는 밑거름이 있었기에 탄생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3ㆍ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등으로 상징되는 애국정신을 계승했고 독립을 향한 간절한 염원과 노력, 투쟁과 희생에 힘입어 탄생했다. 따라서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모든 노력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바는 조선왕조체제가 수립하는데 실패했던 독립된 근대국가로의 이행이었다.

그런데 국가의 3대 요소가 주권, 영토, 국민임을 상기할 때, 1919년 생겨난 임시정부는 이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다 결여한 상태였다. 1919년을 포함한 1948년 이전의 역사는 바로 정식으로 대한민국을 출산시키기 위한 산고의 시간이었다고 해석해야 옳다. 특히 해방부터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까지의 시기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또 하나 통탄할 일은 좌파 지식인들이 그동안 임시정부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 별로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 건국을 아예 부정하면서도, 건국기점 논란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했단 사실이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도 불완전했고 상처투성이였다. 미화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일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유롭고 부강한 나라를 이룩했다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완전했던 존재가 아니라, 건국이후 진정한 근대적 국민국가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에도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는 국가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유일한 국가이기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945년 광복과 1948년 건국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공존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시기 선각자들의 노력 속에서 대한민국의 씨앗은 뿌려졌고, 비록 자력에 의한 독립은 아니었으나, 독립 이후 민주공화국을 세울 기틀이 마련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법치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건강한 시민사회와 근대 국민국가를 이루기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문명사적 의의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결국 분단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반한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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