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미사일 포기 시키기

조동호 /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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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조동호 /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1990년대 중반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대외경제협력위원회 김정우 위원장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는 북한 최초의 경제특구인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책임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북한경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한 미국 방문이었다. 세미나 후 ‘우리 민족끼리’ 저녁이나 먹자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저녁 자리에서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북한경제가 되었다. 놀랍게도 북한경제 상황에 대한 그의 분석과 처방은 남한의 학자들과 동일했다. “솔직히 공화국 경제는 어려운 실정이다. 소련이 망해서 사회주의 시장이 사라진 것과 대홍수로 인해 농업이 붕괴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배급 주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부적으로는 자본이 없어 외부로부터 유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특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투자하지 않아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당연하지,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치적 리스크가 높고, 도로·철도·전기도 열악하고 내수시장도 노동시장도 없는 곳에 누가 투자를 하랴. 그러나 분석과 외부자본이 필요하다는 처방까지는 정확했지만, 그의 결론은 전혀 반대의 것이었다.

“투자 부진의 핵심적인 이유는 미 제국주의 탓이다. 미국은 항상 공화국을 압살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제재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동생인 일본, 미국의 식민지인 남조선은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다. 공화국이 대미관계 정상화를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관계가 정상화되면 경제제재가 풀리고, 그러면 미국, 일본, 남조선을 포함한 전 세계 투자가 밀려들 것이다. 결국 대미관계 정상화는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고, 단순히 정치·외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대미관계가 최우선이라는 그의 발언은 북한 핵심부의 의중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현재까지도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기보다는 ‘선미후남(先美後南)’인 셈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도 이러한 북한의 인식을 기초로 하고 있다. 대미관계 정상화를 우선으로 하려는데 그동안 미국 정부는 ‘무시전략’을 취해 왔을 뿐이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법은 도발밖엔 없었고, 그것이 핵과 미사일로 나타난 것이다. 핵과 미사일은 경제난으로 동요하는 북한주민을 결속시킬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포기의 대가로 막대한 외부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남한의 대북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의 측면도 있다.

대미협상용이자 체제결속용, 그리고 외화벌이용이자 대남압박용이라는 다목적이다. 그래서 뾰족한 대처방안이 없고 일면적인 방법으론 해결이 쉽지 않다. 결국 대응도 다면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한미일 3국은 굳건한 공조 하에 각각의 채널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개발 포기를 설득하면서 경제회생을 위한 지원을 제안하고, 개발을 지속하면 결국 몰락할 것이라고 강력 경고하면서 무기 자체나 기술의 수출을 방지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길 외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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