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있는 남북 정상회담을
유호열 / 고려대 북학한과 교수지난 달 중순 남과 북의 고위급 인사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제3국에서 비밀리에 회동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쪽의 대표는 2차 정상회담의 핵심 인사였던 로동당 통일전선부 김양건 부장과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으로 승격된 원동연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남쪽의 상대역은 구체적으로 실명이 거론된 인사들을 포함해 10여명에 이르고 있으나 본인들은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다. 접촉 인사뿐만 아니라 접촉 내용도 각종 설만 난무할 뿐 확실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북쪽에서 정상회담을 우선적으로 제의하였고 우리측은 북핵문제의 우선 해결을 제시하고, 회담의 장소가 서울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통고함으로써 접촉이 결실은 맺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통일부 등 관련 부서에서는 접촉설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정상회담 개최를 타진하기 위한 고위급 접촉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최고 수준의 합의체이다. 지난 2000년과 2007년 2차례에 걸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북쪽의 김정일 위원장과 각기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도출하여 남북관계 개선에 나름대로 기여하였으나 미흡한 점도 있다. 1차 정상회담 후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고 장담했으나 북한은 그 시간에도 농축우라늄개발을 진행하였고 2년 후 우리 해군장병 6명이 희생된 서해교전이 재발하기도 했다. 2차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약속 이행을 약속하였으나 북한은 결국 모든 걸 파기하고 2차 핵실험을 강행하기까지 하였다. 더구나 2차 정상회담은 차기 대선을 불과 1달 정도 남겨 둔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회담에서 합의한 수많은 약속들이 제대로 검증되지도 못한 채 사장됨으로써 차기 정부에 많은 부담을 주었고, 결국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파행으로 치닫는 우를 범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을 제안할 때나 한반도 신평화구상을 밝힐 때, 그리고 북한 조문단의 청와대 예방시에도 남북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정상회담을 비롯한 각종, 각급의 회담에 나설 뜻을 분명히 하였다. 다만, 과거 2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의 경험과 한반도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회담을 위한 회담이나 정치적, 정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분명한 원칙하에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의 진정한 개선을 위한 회담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3차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여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남북 정상간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회담의 장소로도 3차 회담인 만큼 이번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형식으로 개최되어야 한다. 위원장의 신변 안전이 걱정된다면 굳이 서울은 아니더라도 제주나 인천, 또는 개성 등 북한 내 제3의 장소를 물색할 수도 있으나 또다시 평양을 정상회담장소로 선정해서는 안된다. 아울러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북한의 처지를 고려할 때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실무접촉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과거 2차례 정상회담에서처럼 비선을 통한 비밀접촉이 관행적으로 되풀이되어서도 안되며 이미 접촉 사실이 알려진만큼 통일부 등 공식 대화채널을 통해 투명하게 추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