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한 마음 가진 자를 가장 귀히 여기신다는 말씀 늘 새겨

김운혜 권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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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송정제단 전도사님의 세 살배기 조카가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숨을 거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그 집에 모여서 찬송을 부르며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도사님이 아이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 주자 생명물은 한 방울도 흘러나오는 것 없이 다 들어갔습니다. 죽은 사람은 물을 넘길 수가 없는데 생명물은 넣어 주는 대로 다 들어가니 참 신기했습니다.

죽은 아이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 주자 남김없이 들어가
죽은 사람은 한 방울의
물도 못 넘긴다는데
생명물은 다 넘어가니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 해

그리고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에 아이를 다시 보니 얼굴이 뽀얗게 피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는 살아 있을 때 많이 말라서 눈이 푹 꺼지고 보기에 안쓰러웠는데, 생명물로 씻기고 나니 포동포동 살이 올라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죽으면 살았을 때보다 흉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면 아름답게 핀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1958년 여름에는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 큰 집회가 열려 저도 참석했습니다. 소사신앙촌은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신앙인의 마을로 당시 공장과 주택이 한창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노구산 꼭대기에 오만제단 터를 닦아 놓은 곳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온 산이 사람들로 가득 차 보였습니다.

입관예배 때 시신을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 팔다리를 움직여 수의 입혔는데, 얼마나 부드럽게 움직이는지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유연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모습을 본 교인들과 유족들 모두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

집회 때 저는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에 대해 자세히 풀어 주시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전에도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분이심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교인들끼리 “이 땅에 나타나신 감람나무를 만났으니 우리는 얼마나 복이 많은가요.” 하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소사신앙촌에 다녀온 후로 신앙촌에 들어가기를 마음속으로 항상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63년에 드디어 소사신앙촌에 들어가게 되었고, 몇 개월 후에는 한창 건설 중이던 덕소신앙촌에 입주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저는 건설대로 일했습니다. 건설대 사람들은 힘든 일을 먼저 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벼운 모래 짐보다 무거운 자갈 짐을 서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터를 파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주변에는 일하는 사람들뿐이고 공사장에서 그런 향기가 날 리 없는데 좋은 향기가 맡아지니 저는 ‘은혜를 주시나 보다.’ 하며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건설대 대장이 “모두 나와서 줄을 서세요!” 하고 외치는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니 하나님께서 오셔서 건설대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줄을 서자 하나님께서는 한 명 한 명에게 안수를 해 주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건설대원 시상 모임에서
“김운혜” 하고 불러도
나오지 않자 하나님께서
“일할 때 수건을 잘 쓰던
사람인데”하고 기억하셨다는
말씀 듣고 감격의 눈물 흘려

덕소신앙촌 건설이 마무리된 후에는 제강 공장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 후 1970년에 결혼한 저는 그때부터 전도사인 남편의 발령지를 따라 강원도 송정제단과 충남 당진제단 등에 다녔습니다.
1985년 무렵부터는 청주제단에 다녔는데 한번은 청주제단 교인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입관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단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제단에 나왔던 유족들이 입관예배를 드리기를 간절히 원하여 관장님과 장례반 권사님, 그리고 교인들 여러 명이 그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장례반 권사님이 시신을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 팔다리를 움직여 수의를 입혀 드렸는데, 온몸이 얼마나 부드럽게 움직이는지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유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부가 뽀얗게 피고 입술에는 발그스름한 혈색이 감돌아 연세가 많은 할머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고와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교인들과 유족들 모두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청주제단 권사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장신앙촌이 완공된 후에 하나님께서 소사와 덕소, 기장신앙촌에서 건설대로 일했던 사람들을 모두 기장신앙촌으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그분도 건설대로 일한 적이 있어서 모임에 갔더니, 하나님께서 건설대원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직접 기념품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그래요? 저도 건설대에서 일했는데 그런 모임이 있었는지 몰랐네요.”라고 했더니, 모임에서 출석을 부를 때 제 이름도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김운혜” 하고 불러도 나오지 않자 하나님께서 “일할 때 노란 수건을 잘 쓰던 사람인데.” 하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건설대에서 일할 때 머리가 헝클어질까 봐 수건을 곧잘 썼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작은 부분까지 기억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환하게 웃으시며 건설대원들에게 안수해 주시던 하나님의 모습이 떠올라 어느새 눈물이 흘렀습니다.

덕소신앙촌 건설대에서
일하던 때 터를 파고 있는
공사장에서 날 리 없는
좋은 향기가 진동해
은혜를 주시는 것 알고
더욱 열심히 일해

그런데 2001년에 제가 기장신앙촌에 입주했을 때였습니다. 총무부에서 제 이름이 적힌 기념품이 보관돼 있다며 주었는데, 20여 년 전 건설대 모임에서 주셨던 바로 그 수건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포장지는 빛이 바랬지만 “김운혜”라는 제 이름이 분명히 써 있었습니다. 기념품을 받으면서 감사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건설대로 일했던 그때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여든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지만 건강한 몸으로 활기차게 다닐 수 있고, 귀한 신앙촌에서 살 수 있는 것에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성결한 마음을 가진 자를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하나님 말씀을 마음속으로 되새겨 봅니다. 그 말씀대로 죄에서 벗어나 맑고 성결한 마음을 가진 자가 되어서 그날에 구원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김운혜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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