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끼친 것도 없는데 왜 전도관 짓는 것을 방해합니까?

김운혜 권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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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덕교회 집회가 일주일 정도 열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동안 저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아서 무엇을 먹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옆에 앉은 분들이 보릿가루를 주셔서 몇 번 먹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훨훨 나는 것처럼 걸어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저를 보고 왜 이렇게 얼굴이 좋아졌냐고 했습니다. 거울을 봤더니 검었던 얼굴이 환하게 피어서 제가 봐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집회에 간 후로 일주일씩이나 돌아오지 않아서 부모님은 무척 걱정했는데 거기서 무엇을 먹었기에 이렇게 얼굴이 좋아졌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거기서 밥 먹을 생각이 없어서 잘 먹지 않았다고 했더니 부모님은 더욱 놀라셨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 참석한 후에
몇 년동안 시달려 왔던 병에서 해방되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밥을 하면서도
‘나의 기쁨’ 찬송을 부르고 또 불러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후로 저는 고질적인 두통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몇 년 동안 시달려 왔던 병에서 해방되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밥을 지을 때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나의 기쁨’ 하는 찬송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집회에서 불렀던 찬송이 귓가에 계속 맴돌아 박 장로님 집회에 다시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 집회에 같이 참석했던 성결교회 교인들도
박 장로님 집회에서 신기한 은혜를 많이 봤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1957년이 되었을 때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청주에 전도관이 세워져 박태선 장로님께서 일주일 동안 집회를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청주전도관 개관집회, 1957. 1. 14.~1. 20.) 전도관은 박 장로님께서 전국에 세우시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집회 첫날 청주전도관에 가 보니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바깥에까지 천막을 넓게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청주전도관 개관집회 때 박 장로님께
안수 받는 순간 박하사탕이 가슴에 확
들어온 듯 시원하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 표현할 길 없어

박 장로님께서는 설교 말씀을 시작하시며 “마음 문 여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마음 문을 여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하며 마음 문을 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에서 벗어난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시며 “수십 년 예배당에 다녔어도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어서 속히 회개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회개하라고 힘차게 외치시는 박 장로님의 모습이 저는 엄하고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설교 말씀을 마치신 후 단에서 내려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빽빽하게 앉은 사람들 사이를 빠른 속도로 다니시며 일일이 안수해 주셨는데, 저는 안수를 받는 순간 커다란 박하사탕이 가슴에 확 들어온 것처럼 아주 상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바닥에 앉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 둥둥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힘차게 손뼉을 치며 ‘나의 기쁨’ 찬송을 부를 때 마음속에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마음 문을 열라고 하시면서 “수십 년 예배당에
다녔어도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가지 못하니 속히 회개하십시오” 하고
힘차게 외치시는 모습이 엄하고 두렵게 느껴져

청주전도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동면에도 전도관을 세우자고 뜻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전동면 성결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장로님과 교인들도 있었는데, 그분들은 은혜를 주시는 전도관으로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을 짓기 시작하자 성결교회 교인들이 “전도관은 이단”이라며 전도관에 절대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성결교회 목사에게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장로교회에서 박 장로님을 초청해 집회를 하는 것도 봤는데 이제는 이단이라며 가지 말라고 하니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동제단에 교인이 늘어나면서 제가 사는 송정리에도 제단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송정리에는 제 또래 젊은 교인들이 많아서 모두 힘을 합해 일을 도왔습니다. 흙벽돌을 찍어서 햇볕에 말린 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단 짓는 곳에 갔더니 쌓아 놓은 벽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동네 아저씨 몇 명이 전도관을 지으면 안 된다며 벽을 헐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시 벽돌을 쌓고 있을 때 아저씨 한 분이 와서 “너희 같은 어린애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 전도관이 이단이라는데 우리 동네에 절대 이단을 들일 수 없다.” 하며 큰소리를 냈습니다. 아저씨가 동네 사람들까지 부추겨 자꾸 벽돌을 무너뜨려 놓으니 제단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청주전도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뜻을 모아 전도관을 짓기 시작하자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을 권유하던
성결교회 목사가 돌변하여 이단이라고

제가 너무 속상해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버지는 그길로 아저씨를 찾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전도관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고 아저씨에게 물었다고 하셨습니다. “내 딸이 너무 아파서 사람 구실을 못할 줄 알았는데 박 장로님 집회에 다니고부터 새사람이 됐습니다. 이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입니다. 이단이고 삼단이고 당신한테 해를 끼친 것이 없는데 왜 전도관 짓는 것을 방해합니까?”라고 하셨답니다. 그날 이후로 아저씨가 방해하는 것이 눈에 띄게 줄어서 제단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로도 전도관을 터무니없이 비방하는 사람을 만나면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송정제단이 세워진 후 저는 반사들과 같이 심방을 다니며 주일학생을 전도했습니다. 반사들은 아이들에게 성경 호세아 14장을 가르쳐 주면서 이슬 같은 은혜가 성경에 나와 있으며 박 장로님께서 그 은혜를 내리신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안개와 같이 뽀얗게 이슬 은혜가 내리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었습니다.

(김운혜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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