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기도드려

이소쇠 승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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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소사신앙촌 공장 지대 모습(1958년경)

한번은 하나님께서 이만제단에 오셨을 때 처음으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날 1층부터 발 디딜 틈 없는 사이를 다니시며 한 명 한 명의 머리 위에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에 하나님 손이 닿는 순간, 폭포수 같은 물이 머리 위에 쏟아지는 것 같더니 목 안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계속 넘어갔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 은혜가 폭포수처럼 내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귀한 은혜를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교 시간에는 자유율법을 지키라 하시며 하나님께서 행동과 마음의 움직임을 보고 계신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항상 그 말씀을 기억하며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직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이만제단서 안수를 받는데 하나님
손이 닿자 머리위에 폭포수 같은
물이 쏟아지는 것 같더니 목 안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계속 넘어가

당시 경기도 부천에 있었던 소사신앙촌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생산했는데, 신앙촌 물건을 파는 소비조합 권사님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습니다. 아이들은 신앙촌 빵과 캐러멜이 좋아서 권사님을 기다렸고 저는 권사님이 들려주는 신앙촌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권사님은 은혜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맑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니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소사신앙촌에 가 보고 싶어서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오만제단과 주택가, 공장 지대와 학교를 둘러보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여기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저와 친한 교인의 어머니가 소사신앙촌에 살고 있어서 그 집에 갔더니 점심상을 푸짐히 차려 주셨습니다. 원래 저는 멀미가 심해 차를 타고 나면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그날은 장시간 버스를 탔어도 속이 편안해 밥을 깨끗이 비웠고 한 컵 가득 주시는 생명물도 다 마셨습니다. 그때부터 박하사탕을 문 것처럼 입 안이 시원해지며 단물이 목 안으로 계속 넘어왔습니다.

그 후로 남편에게 소사신앙촌에 들어가자고 설득해서 1962년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전도관에 안 다녔지만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좋을 것 같다며 제 뜻을 따라 주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친구에게 많은 돈을 빌려 줬다가 받지 못하는 바람에 살림이 어려웠는데 저는 궁리 끝에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신앙촌 간장을 가지고 서대문 주택가에 처음 간 날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같은 곳을 돌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골목에 나와 있던 아주머니들이 간장을 달라고 해서 맛보더니 그 자리에서 다 사면서 다음 날 또 가져오라 했습니다. 다음 날 갔더니 더 많은 아주머니들이 간장을 사고 신앙촌 내복과 메리야스도 찾았습니다. 날마다 사람들이 찾는 물건을 가져다주면서 ‘신앙촌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 덕소신앙촌이 세워진 뒤에는 다양한 물건이 나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앙촌 물건을 찾았습니다. 손님들을 만나며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하루해가 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작은 보따리로 시작한 장사는 점점 커져서 서울과 경기도에 트럭으로 배달하며 판매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비조합 하면서 ‘신앙촌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보따리로 시작한 장사가 커져서
트럭으로 배달하며 판매하게 돼

1970년 기장신앙촌이 세워지면서 축복일마다 신앙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번은 축복일에 갔을 때 그전부터 앓았던 다리 신경통이 심해져서 잘 걷지 못하고 절뚝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 축복을 받게 됐는데 하나님께서 아픈 다리를 향해 “쉭! 쉭!” 하고 축복하신 후 일어나 보라 하셔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전혀 아프지 않아서 활기차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제가 절뚝거리는 것을 봤던 소비조합들은 언제 아팠던가 할 만큼 힘차게 걷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축복을 받고 나니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훌훌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축복일에 갔을 때 그 전부터 앓았던 다리 신경통이 심해져 잘 걷지 못하고 절뚝거려
하나님께서 아픈 다리를 향해 `쉭! 쉭!` 하고 축복하신 후 일어나 보라고 하셔서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전혀 아프지 않고 활기차게 걷게 돼

1983년부터 2년 동안은 소사신앙촌 소비조합 총무로 일했는데 그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소비조합 권사님 한 분이 돌아가셔서 미국에 있는 권사님의 아들딸에게 연락하고 소비조합들이 함께 장례 준비를 했습니다. 입관예배 때 생명물로 깨끗이 씻겨 드리고 보니 피부가 맑고 뽀얗게 핀 데다 이슬방울이 얼굴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장로교회에 다닌다는 아들딸은 예배에 들어오지 않고 계속 울고 있어서 잠시 눈물을 거두고 어머니를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보다 더 환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셨습니다. 이슬방울이 얼굴에 맺혀서 수건으로 닦아 드려도 조금 지나면 또 송골송골 맺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를 보내시는 것이 많이 슬프시겠지만 하나님 은혜로 위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분들도 어머니 모습을 보고는 살아 계실 때보다 더 예쁘다고 놀라워하더니 어느새 눈물을 멈추고 편안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 드리니
피부가 맑고 뽀얗게 핀 데다가
이슬방울이 얼굴에 송골송골 맺혀
유족들도 놀라워하며 눈물을 멈춰

그 후 1985년부터 10년 동안은 소사신앙촌 여성회 회장으로 일했습니다. 소비조합을 하는 한편 관장님과 함께 집집마다 심방하고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매주 교인들과 같이 기장신앙촌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안수도 받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다들 기쁘고 즐거워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바쁘게 소비조합을 하고 전도하려 다녔던 때가 황금같이 귀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1995년에는 늘 그리던 기장신앙촌에 입주해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소비조합을 하고 직분을 맡으며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일을 다 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내 정성을 온전히 기울여 일했을 때 한없이 기쁘고 즐거웠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찬송하고 기도하며 네 할 일을 다하라. 그 약속하신 모든 은혜 네게서 이뤄지리라.” 하는 찬송처럼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서 허락해 주시는 은혜를 받고 싶습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성결하고 아름다운 자를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간직하고 살면서 성결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소쇠 승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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