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신’이 임하시니 온 몸이 뜨거워지며 마음이 포근해져
박영례 권사(1) / 덕소신앙촌저는 1937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6.25 전쟁 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생계가 막막해진 저희 가족은 먹고살 길을 찾아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언니가 일찍 출가한 후 장녀 역할을 했던 저는 어머니를 도와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 가려고 동대문시장의 상인들 틈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열일곱 살 사춘기에 하루하루가 고달팠던 저는 마음으로 의지할 곳을 찾고 싶었으며 ‘하나님을 믿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친구를 따라 약수동 신일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웃집에 살면서 중앙교회에 다니던 기복이(조기복, 현재 기장신앙촌 소속)가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은 부흥집회를 하시며 놀라운 은혜를 내리신다면서 예전에 박 장로님의 남산 집회에 갔을 때 많은 병자들의 병이 낫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 집회에서 너무나 좋은 향기를 맡았다면서 그 향기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박 장로님이 서울 제2운동장에서 집회를 하신다며 같이 가 보자고 했는데, 기복이의 이야기에 마음이 이끌린 저는 집회 첫날부터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박장로님께서는 시편을 인용하신 후
우리가 기쁘고 즐거울 때 손뼉을 치듯
즐거운 마음으로 손뼉 치며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말씀하심
드넓게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아 놓은 집회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다른 부흥강사가 서울 제2운동장에서 집회했을 때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파였습니다. 잠시 후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셔서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성경에 ‘손바닥을 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라.’ 하는 구절(시편 47편 1절)이 있다고 하시며, 우리가 기쁘고 좋을 때 손뼉을 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자고 하셨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을 부를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계시는 단상 주변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저게 뭐지?’ 하며 궁금했는데 바로 그때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멈추시고 “지금 뽀얗게 내리는 것이 보입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집회장의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 뽀얀 것이 이슬 같은 은혜라고 하시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신을 보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성신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제 눈으로 직접 성신을 본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어깨가 닿을 정도로 앉은 수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안수해주셔
‘귀한 은혜를 주시려고 저렇게 애쓰시는구나’라고 감사해
집회 중에 박 장로님께서는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일일이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제 머리에 ‘탁!’ 하고 안수를 해 주시는 순간 너무나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백합꽃 향기처럼 향긋하면서도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냄새가 계속해서 맡아졌으며, 그 향기가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 왠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졌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어깨가 닿을 정도로 빼곡히 앉아 있는 사람들뿐이고 그처럼 향기로운 냄새가 날 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전에 기복이가 향취 은혜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것이 떠올라 ‘아! 이 향기가 바로 은혜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박 장로님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한 명도 빼 놓지 않고 안수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귀한 은혜를 주시려고 저렇게 애쓰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운동장 집회는 일주일 동안 주야로 계속되었습니다. 예배에 열중한 사람들은 철야 기도를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집회장에서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금세 앉을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서로 교대를 하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저는 매일 장사를 마친 후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듣는 것이 좋아서 남들처럼 하루 종일 집회장에 있고 싶었지만, 하루라도 장사를 하지 않으면 당장 끼니가 없는 상황이라 마음껏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몹시 아쉬웠습니다.
6.25 전쟁 후 상경해 매일 고달프게 일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낙심되고 불안한 마음을 고하며 ‘하나님 도와주세요’ 기도드리는데
뜨거운 불덩이가 몸에 들어온 듯 후끈하고 마음이 포근해져
장사를 서둘러 마치고 집회장에 오면 박 장로님께서 단에 서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의 인도로 찬송을 부르면서 그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모든 것을 고한 사람 복 받네~” 하는 찬송가처럼 제 마음과 형편을 있는 그대로 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저는 가난에 시달리며 어린 동생들을 굶기지 않아야 된다는 걱정이 떠나는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고달프게 일해도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해야 할까?’ 하며 낙심이 되었습니다. 불안하고 어두운 제 마음을 하나님께 다 고하는 동안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간절하게 기도드릴 때 뜨거운 불덩이가 제 몸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온몸이 후끈후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쌀쌀한 가을날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제 몸은 뜨겁고 훈훈하기만 했습니다. 그 전에 ‘불성신’에 대해 들었던 저는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구나.’ 하면서 마음이 포근하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관하고 낙심했던 지난날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앞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힘차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