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심령이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아름답게 피어나”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은혜
발행일 발행호수 2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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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단지 가는 길에 위치한 장미터널.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그중에 황무지와 같이 메말랐던 마음이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느끼고 체험한 사실입니다. 천부교인들의 신앙체험기에는 하나님 은혜를 받아 마음과 생활이 달라진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번 테마로 보는 신앙체험기는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은혜에 관한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어둡던 마음이 환하게 밝아져

이웃집 동생 수옥이의 권유로 저는 1956년부터 밀양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밀양전도관에는 당시 보기 드물었던 음악 종이 설치되어 찬송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배 때 종소리를 들으며 예배실 안에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백합꽃 향기같이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실에는 그런 향기가 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싶어 교인 분들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그 향기가 향취 은혜라며 제가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향취를 맡으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며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은혜가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 기쁨과 평안이 가득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하나님 은혜는 참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과 함께 힘겹게 생계를 꾸리고 있었습니다. 잘사는 큰집 식구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쌀쌀한 눈길만 받기 일쑤였고, 어려운 생활이 풀리지 않아 마음이 외롭고 어두웠습니다. 웃는 일이 드물었던 제가 제단에 다니면서 점점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나 없으나 늘 밝게 웃을 수 있었고 하나님 말씀대로 깨끗하고 바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가집 시골 제단이지만 밀양제단에 가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기에 세상 어느 곳보다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듬해 상경한 저는 서울 이만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한강을 굽어보는 산 위에 서 있는 이만제단은 그때까지 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와 예배를 마친 후 밖으로 나오면 거리가 온통 전도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향긋한 향취 은혜가 진동하며 목으로 달디단 물이 넘어오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형편이 어려워 다른 사람의 집에서 일을 도우며 생계를 꾸리고 있었는데, 고향을 떠나온 처지에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평안했습니다. 은혜를 받을 때면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이 즐겁고 기쁘기만 했습니다.

오복순 권사/영주교회

어린 시절 잘못했던 기억까지 떠올라

1955년 어느 날,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가 열리는 날 도림동 장로교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등단하신 박태선 장로님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으시고 얼굴이 환하셨는데, 제 느낌으로 아주 훌륭하고 좋으신 분인 것 같았습니다. 박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모두들 힘차게 찬송을 부를 때 저는 찬송가를 몰라 가만히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찬송 부르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공연히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데도 집에 갈 생각이 나지 않고 배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집회 3일째 되던 날, 예배 시간에 갑자기 예전에 잘못했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누가 귀에다 대고 하나하나 일러 주는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날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인 충남 천안에는 밤나무와 대추나무가 많아 어릴 적에 친구들과 함께 밤과 대추를 따다 먹곤 했는데, 내 것이 아닌 남의 열매를 좋아라 하며 먹었던 일이 너무나 더럽게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 안타깝고 후회되는 마음에,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스물한 살이던 그때까지 어른들 말씀에 순종하며 나쁜 일 안 하고 살았다고 생각했었지만, 하나님 앞에는 추하디추한 죄인임을 알게 되었고 그토록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용서를 구하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정순례 권사/부천교회

안찰받고 아무도 못 꺾던 고집 사라져

1960년 무렵으로 기억됩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안동전도관에 오셨을 때 교인들에게 안찰을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안찰을 받았는데 앞에서 안찰받는 사람들을 보니, 고래고래 고함을 치거나 사지를 버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런 소리 없이 가만히 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배 위에 살짝 손을 얹기만 하시는데도 저는 창자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집이 세구만.” 하고 말씀하셔서 저는 속으로
‘제 속의 죄를 다 씻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몹시 아팠지만 고함을 치거나 버둥거리지 않으려고 아픈 것을 꾹 참았습니다. 통증이 차츰 물러가고 시원함을 느낄 때 하나님께서 “이제 됐다.” 하시며 손을 떼셨습니다. 저는 안찰을 받고 나오며 고집이 세다고 하시던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대쪽 같은 아버지 성품을 닮은 저는 고집이 무척 세어서 제 의견만 내세우는 일이 많았고 한번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못 꺾는 고집불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은 후로는 제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 의견에 순순히 따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마음이 솜뭉치 같다고 해야 할지 참 부드럽고 온순해지는 것을 저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권기남 권사/기장신앙촌

하나님 은혜를 받으면
외롭고 어둡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고
아무 걱정과 근심 없이
즐겁고 기쁘기만 해
또 마음이 온유해지고
죄를 분별하게 되어서
말씀대로 깨끗하고
바르게 살고 싶어져

미워하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져

1957년 연초로 기억됩니다. 스물한 살이었던 저는 신을 찾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당시 저는 새어머니와 살면서 사사건건 배다른 동생들과 차별하는 새어머니를 속으로 미워했는데, 갈등을 겪고 마음이 괴로울수록 신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허무한 인생이 참된 신을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복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신을 믿으며 복잡한 고민을 털어 버리고 진실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를 따라 마포 이만제단에 가게 되었는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이 좋아서 그다음 주에도 이만제단에 갔습니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배를 인도할 때 하나님의 성신이 내리는 것을 직접 보고 체험한 사람이 많다.”고 하시며 구원을 얻으려면 더러운 죄악을 성신으로 씻어야 하며 죄악을 속에 그득히 채워 놓고도 천당 갈 줄 믿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하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성신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러자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내가 새엄마를 얼마나 미워했나. 이 마음 가지고 어떻게 성신을 받을까!’ 그때부터 엄마를 미워하고 무시했던 제 모습이 낱낱이 떠오르는데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당장 용서를 빌지 않으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두 분은 어안이 벙벙해 입을 다물지 못하셨습니다. 생전 부엌일을 하지 않던 제가 부엌에 들어가 일을 돕고 동생들 이불을 빨아 주며 ‘하나님! 이렇게 하면 죄가 씻어질까요?’ 하고 기도드렸습니다. 은혜가 뭔지 알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제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잡하고 속상했던 마음을 누가 가져갔는지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지며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웃음이 떠나지 않는 저를 보고 부모님도 기뻐하셨고 가시방석처럼 불편했던 집안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달라진 제 모습을 보고 무척 놀라워하셨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인력으로 안 되는데 전도관에 무엇이 있나 보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도관에는 하나님의 성신을 체험한 사람이 아주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 드렸더니 더욱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 주부터 아버지가 이만제단에 나가게 되면서 동생들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정애 퇴임 관장/기장신앙촌

신앙촌에 살면서 느낀 평안과 기쁨

1958년 소사신앙촌은 놀라운 속도로 변해 갔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집이 생기고 공장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탱크에 아침저녁으로 축복하시며, 목욕탕도 만드셨습니다. 저는 그곳의 관리인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욕탕도 아침저녁으로 축복하셨고 그때마다 저는 안찰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신앙촌 안에서 은혜를 받고 살다 보니 시인 아닌 시인이 되었습니다. 따사롭게 빛나는 햇빛도, 바람 부는 언덕도, 공중에 나는 새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으며, 이 모든 자연의 이치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길바닥에 툭 튀어나온 돌을 보면 저 돌에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져 다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그 돌을 치워야만 했고, 만약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면 괴로워서 못 견딜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죄를 의식으로 분별하게 되었으며 제 마음이 솜같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기천 권사/동인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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