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정치의 끝, 법치주의가 답이다
홍성걸/국민대 행정학과 교수정치권 막말로 인한 국정마비
그대로 두면 미래 세대에게
지역, 이념, 계급, 세대갈등 돼
정치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법치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어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인 2019년,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음에도 우리나라는 외교안보위기와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 안타까운 일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경제를 회복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치권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는커녕 과거와의 전쟁만을 일삼고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막말과 패거리 정치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최종적 의무가 있는 대통령조차 정치적 파트너인 야당을 친일파의 후예, 독재자의 후예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급기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현충원에서 6.25 남침의 선봉에 섰던 김원봉의 서훈까지 언급했으니, 이제 누가 나서서 극도로 분열된 이 사회를 통합시킬 것인가?
정치권의 막말과 그로 인한 국정마비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아무리 연극이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을 ‘노가리’라고 비하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년’이라고 욕했다가 비난이 일자 ‘그녀는’을 줄인 말이라고 옹색한 변명을 했었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었던 홍익표 의원은 박대통령을 귀태(鬼胎: 태어나서는 안될 사람)라고 표현해 비난을 자초했다. 최근 이해찬 대표는 야당의원들을 싸잡아 ‘도둑놈’이라고 비난했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사이코패스’라고 비하했으며, 차명진 전 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쯤 되면 정치권의 막말은 시정잡배, 딱 그 수준이다.
국회에는 윤리특별위원회가 있어 품위를 손상시키는 의원들을 징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지난 10여 년간 사실상 의원을 스스로 징계한 일이 거의 없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들도 정치권의 막말에 통렬한 비난을 퍼붓지만 그때뿐이다. 의원들은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해놓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떤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유권자들도 평소에는 정치인의 막말을 비난하면서도 막상 선거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표를 준다. 오히려 이념적으로 가까운 정치인들에게 표를 몰아주기까지 하니 막말은 어쩌면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막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ICT와 SNS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한마디로 표현하여 즉시 뉘앙스까지 전달하는 언어의 축약이나 비유는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퍼진다. 품위가 있는 고상한 언어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니 자극적 막말로 주목을 끄는 것이다. 그래서 막말과 표현의 자유의 경계는 모호하고 애매할 수밖에 없으며,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모든 비판을 무조건 막말이라고 비난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표현의 자유이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막말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각 정당들이 막말의원들을 공천과정에서 고려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다. 국격을 크게 손상시키고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치권의 막말을 그대로 둔다면 득표를 위해 지역갈등이나 이념갈등, 계급갈등, 심지어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막말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막말은 정치의 영역이지만 정치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법치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막말문화가 사라질 때까지 만이라도 과도한 막말로 물의를 일으킨 정치인들의 피선거권을 일시적이나마 제한하는 것은 어떨까?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대통령도 자연인으로서 개인적 소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 갈등과 이념충돌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적어도 임기 중에는 개인적 소신을 앞세워서는 안된다. 유권자는 자연인 문재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 문재인을 선택했다. 개인적 소신을 앞세우는 것은 자연인 문재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지 결코 대통령 문재인이 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