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지어서는 안되는 자유율법을 알게 돼
전금의(2) / 기장신앙촌제단에 계속 다니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디도 안 계신 곳이 없으시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며 나를 보신다고 생각하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바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말라 하시는 자유율법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생각과 마음을 멀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받은 식구들이 모여
자유율법을 지키며 신앙 생활을 하는
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 간절
그 후 전도사님으로부터 신앙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경기도 부천에 신앙인의 마을을 세우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촌은 은혜 받은 식구들이 모여서 자유율법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싶고 제단에서 성가대도 하고 싶었는데,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서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촌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1958년 6월 30일 드디어 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입주한 날은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 큰 집회(노구산집회, 1958.6.30.~7.5.)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산 전체가 사람으로 덮인 것 같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박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찬송을 부를 때면 마치 큰 바다에서 물결이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고, 우렁찬 찬송 소리가 하늘까지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하다가도 박 장로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시면 모두가 귀를 기울이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그 집회에 연 7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모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의 이집 저집에서는
찬송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과연 찬송이 끊이지
않는 신앙의 마을이구나 생각
저는 전도관에 다니면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손뼉을 치는 것을 보고 왜 손뼉을 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집회 중에 박 장로님께서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성경 시편에 보면 손바닥을 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는 구절이 있다고 하시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찬송할 때 사람들을 보니 손뼉을 치는 모양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팔을 많이 벌리는 사람, 작게 벌리는 사람, 가슴 앞에서 치는 사람, 배 앞에서 치는 사람, 박수 소리가 크게 나는 사람, 박수 소리가 안 나는 사람 등등 다양했습니다. 찬송이 끝난 후 저는 속으로 ‘하나님! 사람들이 손뼉을 여러 가지로 칩니다. 어떻게 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합당한 것입니까?’ 하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순간 박 장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뼉을 칠 때 손의 위치는 가슴 앞에서, 너비는 어깨만큼 벌리고 치면 됩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혼자 박수 소리를 크게 내면 다른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된다고 하시며 다른 사람과 박자와 소리를 꼭 맞춰서 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손뼉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마치 제 생각을 들으신 것처럼 설명해 주시니 참 놀라웠습니다.
박 장로님께 처음으로 안찰을 받아
살짝 손을 얹으셨을 뿐인데 몹시 아파
우리 속의 죄가 성신을 대항하면서
고통을 느끼는 것임을 그때 알게 돼
저는 집회 중에 쉬는 시간이면 노구산에서 내려와 집에 들렀는데 그때마다 이 집 저 집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신앙촌 사람들은 쉬는 시간에 집에 와서도 몇 명씩 모여 앉아 또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신앙촌에는 찬송 소리가 끊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구산 집회를 마친 후 저는 수예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장로님께서 안찰을 해 주셔서 처음으로 안찰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차례대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안찰하시며 눈과 배에 잠깐씩 손을 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서 안찰을 받았던 분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다음 제 차례가 되어 안찰을 받을 때도 박 장로님께서 살짝 손을 얹으실 뿐이었지만 저는 몹시 아팠습니다.
안찰이 끝난 후 제 앞에서 안찰을 받았던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프기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송곳을 불에 달궈서 쑤시는 것처럼 아프더라고 했습니다. 저도 아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안찰하실 때 손을 가만히 대시기만 하던데 왜 그렇게 아팠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박 장로님께서 안찰하시며 성신을 부어 주시는데 우리 속의 죄가 성신으로 사해질 때 그렇게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늘 하고 싶었던 성가대에 가입해
박 장로님께서는 성가대원들에게
자주 안수를 해 주시고 연습 시간에
오셔서 격려해 주시기도
그 후 저는 늘 하고 싶었던 성가대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의 주인 없는 상점에서 성가대 가운을 살 때 왜 그리도 기쁘던지 발걸음이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성가대는 매주 찬송을 연습해서 예배 시간에 특순을 했는데 성악을 전공하고 멋지게 부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노래를 할 줄 몰랐지만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아서 매일 악보를 끼고 다니며 연습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성가대원들에게 자주 안수를 해 주셨으며 연습 시간에 오셔서 격려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성가대에서 마음껏 찬송을 부를 때면 ‘나는 하고 싶은 걸 다 이뤘네.’ 하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전금의님 신앙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