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의 추억

발행일 발행호수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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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이 세상을 떠난지도 한달이 지났다. 미국의 체니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은 ‘역사적 인물’을 넘어서 미국과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신의 섭리’에 따라 나타났던 인물” 이라고 그를 평가하였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소련의 세계공산화 전략 앞에 온 지구촌이 공산주의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는 자유세계의 맹주로서 레이건은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일찌감치 단정하고 그것을 붕괴의 대상으로 규정하였다. 전임 대통령들의 평화공존 정책은 소련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라고 판단한 레이건은 군사력이 아닌 군비경쟁을 통한 경제적 출혈로 소련을 붕괴시키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의 경쟁을 견뎌내지 못한다는 것을 꿰뚫어 본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그의 집권 2기에 드디어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미국과의 엄청난 군비경쟁을 이기지 못한 소련은 마침내 무너졌으며, 레이건은 ‘총 한방 쏘지 않고’ 냉전시대를 자유세계의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레이건은 불황에 허덕이던 미국경제에 감세를 핵심으로 하는 ‘레이거노믹스’ 경제정책을 폈다. 그는 빈곤층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나 빈곤층에 필요한 것은 정부의 분배정책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성장을 통한 참여의 기회라는 신념을 고수했다. 결국 레이건의 첫 임기 중반부터 경제는 호전되고 ‘미국의 정신’은 재점화 되었다. 그러나 레이건은 노조의 불법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레이건 재임시절 미국의 항공관제사 1만3000여 명이 법으로 금지된 파업을 감행하였다. 레이건은 그들이 파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무조건 해고하고 재취업까지 금지한다고 공표했다. 관제사 노조가 불법파업을 계속하자 레이건은 그들을 모조리 해고했고 군과 신규인력으로 대체했다. 관제사 파업으로 항공기의 안전운항이 위험에 처하고 승객들은 많은 불편을 겪었지만 레이건은 ‘법과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쫓겨난 관제사들은 무릎을 꿇고 재취업을 애걸하였으나 그들은 일생 동안 관제사로 취업할 수 없었다. 레이건의 ‘법과 원칙’에 따른 단호한 태도로 미국에서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은 사실상 사라졌고 미국경제는 번영을 구가할 수 있게 되었다.
 
공산제국 소련의 붕괴라는 인류사적 대사건이 발생한 역사의 무대에서 ‘신의 섭리’로 주역을 맡았던 레이건 대통령, 그는 가고 없어도 그의 탁월한 비전과 인류에 대한 공헌은 세기를 넘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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