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신앙촌(19. 끝) – 시온 어린이 합창단②

음악인들 찬사속 각종 대회 휩쓸어
발행일 발행호수 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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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시온을 알리는 꼬마 전도사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던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라디오 방송 뿐 아니라 본격적인 TV 방송이 시작 되면서 TV 출연 요청이 줄을 잇게 된다.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1962년 8월 14일 KBS TV 방송에 출연했다. KBS TV는 1961년 12월 31일 첫 전파를 내보냈는데 처음에는 서울 경기 지역만 시청이 가능했고, 개국 당시 수상기는 8,000대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텔레비전이 보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린이 합창단은 TV의 골든타임에 출연을 한 것이다. 당시를 신앙신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서울 중앙 방송국과 문화 방송국에서 수차례에 걸쳐 녹음 취입을 한 바 있는 시온합창단은 지난 14일 요즘 국내에서 한참 붐을 이루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함으로 마침내 그 자태를 수많은 시청자 앞에 드러내어 다시 한번 믿음의 마을의 ‘평화로운 정서’와 그 순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고지순한 정서를 노래
`외국 합창단에 비해 조금도 손색 없는 국제적 수준이다`
종교와 음악이 융화된 지고지순한 정서가 오늘의 복잡한 생활 속에서 지친 병든 영혼들에게 절실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날 하오 8시부터 30분간을 흐뭇한 리듬으로 잠시나마 잃어버린 마음의 본향을 찾게 해준 이들의 역할은 크다”(신앙신보 1962.8.20)
“조명이 얼마나 뜨거웠는데요, 지금은 에어콘 시설들이 잘 되어있지만 그때 우리들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TV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잖아요, 당시의 PD가 우리한테 줄 지어서서 노래하지 말고 박수도 치고 발도 구르고 율동적으로 하라고 요구했었어요.” 그때 앨토 파트로 합창에 참가했던 김화란 권사(61세.덕소교회)는 그날의 기억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신앙신보의 보도는 계속된다. “47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또한 현악기를 다루고 있어 일명 ‘시온 어린이 합주단’이라고도 부르는 실내악을 겸한 특색 있는 합창단인데 이날 ‘텔레비전’방송에는 홍두표 씨의 특별연출로 과거 열을 지어 노래만 하던 딱딱한 형식을 떠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가운데 율동적으로, 산과 들의 그림이 배경으로 되어 있는 무대 위에서 시원스런 노래를 들려준 바 곡목은 포스터 작곡의 ‘꿈꾸는 가인’,‘오 수잔나’, 미국민요 ‘언덕위의 집’, ‘그리운 등불’, 베토벤의 ‘봄의 춤’, 모차르트의 ‘자장가’,나포리 민요 ‘싼타루치아’ 등 13곡이었다.”
활발한 공연활동을 했던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육군본부, 미 8군 사령부 및 미공보원 등의 요청으로 그곳을 찾아가 공연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산 비행장으로 미군 부대 위문 공연을 갔었는데 그때 수세식 화장실과 뷔페 식사를 처음 봤어요. 우리들은 신기해서 용변이 있지도 않은데도 줄을 서서 화장실을 갔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때 원어로 노래를 불렀어요.” 김화란 권사는 그때 불렀던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르는데 그 가사가 지금도 술술 영어로 나온다.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지방의 천부교회에 가서 합창도 하고 절기 때면 오만제단 단 위에서 합창을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1966년 12월 17,18일 양일간 있었던 KBS주최 전국 어린이 음악 콩쿨대회에서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합창 및 독창 부문에서 각각 공보부 장관상인 특상을 받았다.  이 수상을 기념하여 어린이 합창단은 1967년 3월 13일 신세기 레코드사 스튜디오에서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숭어’ 등 21곡을 녹음하여 레코드를 발매하게 된다. 곽상수 연세대 음대 교수는 “우리나라 어린이 합창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초등학교 수준을 완전히 초월했다.”고 했으며, 작곡가 김규환씨는 “외국의 유명한 합창단에 비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국제적인 수준이며 우리나라에선 으뜸이라고 생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강을 끼고 조성된 덕소 신앙촌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한강에 배를 띄우고 파란 색의 합창단복을 입은 모습을 레코드 판 표지에 담았다. 40년이 지난 지금 봐도 합창단원들의 의상은 세련되었다. “그때 우리 합창단은 서울 명동의 노라노 의상실에 가서  직접 가봉해서 맞춰입었어요.” 그 때 보았던 노라노 씨에게 감명을 받고 디자이너의 길을 걸은 최춘자(51세)씨의 이야기다.
합창단은 여러 합창 대회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데, 1967년 12월 28일에 한,중,일 세 나라가 참가하는 아세아 소년소녀 합창제에 출전하고, 1968년 5월의 제1회 소년소녀 합창제에 이어 이듬해 9월의 2회 한국 소년소녀 대합창제에 출전하여 ‘한국 화음의 정상’이라는 절찬을 받았다.
1969년에는 시온합창단의 제1회 정기연주회에 찬조출연하여 독특한 두성음 창법으로 9곡을 연주하였다. 1970년 시온합창단의 제2회 정기연주회에는 시온 어린이 합창단과 시온 어린이 현악부가 함께 찬조출연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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