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송의 뜻을 깨달아
김신자 집사(1) / 기장신앙촌제가 이 길을 알게 된 것은 1955년 스물한 살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선교사가 되려고 인천 전동 감리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정도선 목사는 일본 신학교를 나와 성경에 능통하고 인천 성경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1955년 가을부터 정 목사는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하신 분의 집회에 가 보자며 교인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저도 목사를 따라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와 서울 제2운동장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매일 성경 과외를 받으며 장차 선교사로 일할 생각이었는데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집회에서 체험한 은혜와 놀라운 말씀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었어도 소설같이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성신을 직접
보고 체험하게 되니 호세아 14장을
풀어주시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아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머리카락 타는 것처럼 지독한 냄새가 나더니 그 냄새가 싹 걷히고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그때부터 단물이 목으로 계속 넘어와서 집회에 참석한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또 찬송을 부를 때 천막 안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바깥에는 햇빛이 쨍쨍한데 천막 안에는 앞사람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안개가 끼어 있어서 ‘저게 뭘까?’ 하고 궁금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는 지금 여기에 성신이 내린다 하시며 지독하게 타는 냄새와 좋은 향기가 모두 성신을 받은 증거라 하셨습니다. 성신을 받아 죄가 소멸될 때 죄가 타는 냄새를 맡게 되고 향취 은혜를 주실 때 세상에 없는 좋은 향기를 맡게 된다 하셨습니다. 또한 집회장에 뽀얗게 내리는 안개를 본 사람은 손을 들라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손을 번쩍번쩍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이슬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라 하시며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도 증거가 있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신이 증거가 없겠습니까!” 하셨습니다.
예배시간에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나더니 그 냄새가 싹 걷히고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하고 그때부터 단물이 목으로 계속 넘어와
또 찬송을 부를 때 천막 안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내려
특히 호세아 14장을 풀어 주시며 하나님의 신이 이슬과 같이 내린다는 구절을 설명해 주실 때는 눈이 뜨이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었어도 소설같이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뽀얗게 내리는 성신을 직접 보고 체험하게 되니 그 구절을 풀어 주시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을 공부한 것은 수박 겉만 핥은 것이었고, 성신을 받고 그 구절을 깨닫는 것은 수박을 쪼개서 맛을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송을 불러도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말씀을 깨달을 때 그 맛이 꿀 송이보다 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성신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 박사요 신학박사라도 인학(人學)에 지나지 않는다 하실 때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이 인학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어 선교사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고, 감리교회에서 나와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인천전도관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신이 있는 참길을 알았으니 전도를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마침 인천집회에서 알게 된 아주머니가 해운 보육원의 보모로 일할 생각이 없냐고 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 부모 잃은 고아들을 위해 보육원이 많이 생기던 시절이었습니다. 200명이 넘는 고아를 돌보고 가르치느라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아이들을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병이 심각했던 아이에게
저녁마다 생명물을 발라 주니
흐르던 진물이 꾸덕꾸덕 마르고
일주일도 안 돼서 새살이 돋아나
고아들은 허약하고 병치레가 잦은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여덟 살 난 여자 아이는 피부병이 심각해 매일 팔다리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 줘도 다음 날이면 다시 진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인천 기독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낫지 않아서 아이도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인천전도관에 예배드리러 갔더니 한 권사님이 아픈 아이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생명물을 작은 병에 담아 줬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천전도관에 오셨을 때 축복해 주신 생명물이라 했습니다. 저는 그 생명물을 저녁마다 아이에게 발라 줬습니다. 약을 발라 줄 때는 아무 효과가 없었는데 곪아 터진 자리에 생명물을 바르자 흐르던 진물이 멈추고 꾸덕꾸덕 마르면서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어느새 딱지가 앉더니 일주일도 되기 전에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는 것이었습니다. 피부병 때문에 늘 우울하던 아이가 깨끗하게 나아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것을 보고 다른 보모들도 놀라워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보육원의 아이들 대부분이 저를 따라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보육원 강당에서 아이들에게 손뼉 치며 찬송 부르는 것을 가르쳐 줬더니 그게 재미있었는지 아이들은 저만 보면 손뼉을 치며 찬송하자고 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참 감사했습니다. 보육원장은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였는데 많은 아이들이 전도관에 다니게 되자 가지 말라고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보육원장 사모님인 김 권사님은 저의 권유로 인천전도관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 자녀들도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김신자 집사님 신앙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