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맑고 바르게 살아가겠습니다’

김신자 집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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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70년대 기장신앙촌 수예공장에서 재봉수를 놓는 모습

김 권사님의 자녀 중에는 열 살 난 딸아이 정일이가 있었습니다. 폐병을 앓았던 정일이는 항상 창백하고 기운이 없었는데 숨을 거두기 전 몇 달 동안 인천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세상을 떠나던 날도 생명물을 마시고 기도드리다가 스르르 잠드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고 했습니다. 그 집에 가서 아이가 누워 있는 방 문을 여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아주 진한 향취가 머리 위에서 쏟아 붓는 것처럼 진동했습니다. 방 안에 들어가 보니 창문이 꼭꼭 닫혀 있는데도 시원한 바람이 정일이 주변을 계속 감돌고 있었습니다. 생전에 창백했던 아이는 두 볼에 발그스름한 홍조를 띠고 엷은 미소를 짓는 것이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김 권사님이 하는 말이, 정일이가 숨을 거두기 전 기도드릴 때부터 향취가 났었다며 하나님께서 은혜를 계속 보내 주시나 보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입관예배를 드릴 때는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하게 씻었는데 온몸이 살아 있는 아이처럼 노긋노긋 부드러웠고 얼굴은 더 뽀얗고 예쁘게 피었습니다. 저는 원래 마음이 약해서 죽은 사람 가까이 가지 못했는데 정일이는 살았을 때보다 더 예쁘고 곱게 핀 모습이 신기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하나님 은혜는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폐병을 앓았던 아이의 시신
두 볼에 발그스름한 홍조를 띠고
다음 날에는 더욱 뽀얗게 피어
하나님 은혜가 놀랍고 신기해

그 후 1957년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건설대원을 모집했습니다. 저는 신앙인의 마을을 건설하는 데 동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자원했습니다. 건설대로 일하는 것은 참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새벽예배를 드리면 가슴속에 기쁨이 착착 차오르는 것 같았고, 같이 일하는 건설대원들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나왔습니다.

각 반 별로 작업할 때 한번은 우리 반에서 백토를 삽으로 퍼 담는 작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흙을 퍼 올릴 때 무게가 하나도 없이 삽이 저절로 휙휙 날아가는 것 같았고, 저뿐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또 좋은 향취가 계속 진동해서 트럭 한 대 분량을 채울 때까지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반 건설대원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반이 한참 일하고 있을 때 쳐다봤더니 뽀얀 기둥 같은 것이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로 내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반 건설대원들이 전부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했습니다. 저는 ‘그때 은혜를 주셔서 그렇게 힘이 나고 몸이 가벼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흙을 퍼 올리는 작업할 때 좋은 향취가 계속 진동해 힘들 줄 모르고 신나게 일해
나중에 다른반 건설대원들이 우리가 일하는 동안 머리 위로 뽀얀 기둥 같은 것이
내리는 모습 봤다는 말 듣고 ‘은혜를 주셔서 그때 힘이 나고 몸이 가벼웠구나!’ 느껴

그 후로 땀을 뚝뚝 흘리며 일할 때도 땀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아주 향기롭고 좋은 향취가 진동하는 것을 건설대원들이 함께 체험한 적도 있었습니다. 은혜를 아는 건설대원들은 시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어떻게 하면 일을 더 많이 할까 궁리했습니다. 저는 일을 마치고 숙소에 갈 때면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일했나.’ 하고 하루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내 힘을 다해 일하는 하루하루가 참 보람되었습니다. 지금도 건설대 시절을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고맙고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설대로 일하면서 새벽예배를
드리면 가슴속에 기쁨이 차올라
같이 일하는 대원들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나

신앙촌에 수십 개 공장이 건설되고 주택과 학교, 여러 가지 시설이 지어지면서 만 명이 넘는 교인들이 입주했습니다.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고 건설도 계속됐기 때문에 신앙촌 주민들은 각자 일을 마치고 나서 건설 일도 도왔습니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활기가 넘치는 신앙촌이었습니다. 그때 수예 공장에서 수를 놓는 기술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건설대원 몇 명과 같이 수예 기술을 배웠습니다.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되고 수예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가면서 저는 수예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화려한 수를 놓은 이불이 큰 인기를 끌어서 시간을 다투며 바쁘게 일했습니다.

한번은 주문이 밀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향긋하고 좋은 향취가 진동해서 하나님께서 오셨나 보다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단에 서실 때나 공장에 들어오실 때 항상 향취가 진동했기 때문에 향취가 나면 으레 하나님께서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하나님께서 오시지 않는데도 향취가 머리 위에서 들이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지고 몸이 둥둥 뜨는 것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귀한 은혜를 보내 주시는구나.’ 하며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수예공장에서 일에 집중하는데
향취가 머리 위에서 들이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지고 몸이
둥둥 뜨는 것처럼 가벼워져

그 후 1970년 기장신앙촌이 건설된 후에는 수예 공장과 와이셔츠 공장 등에서 일하다가 1980년대 들어서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부산 시내에 아는 사람이 한 명 있어 처음에 그 집에 가기 시작했는데, 신앙촌 물건을 찾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고객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신앙촌 소비조합도 반가워했습니다. 그 후로 30년 넘게 고객들과 동고동락하며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고 소비조합을 하면서 아들 둘을 키우고 뒷바라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 수십 년 전 제가 보육원에서 일할 때 전도했던 아이가 지금 소비조합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열심히 이 길을 따라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드리게 됩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은혜 부어 주시던 모습이 많이 떠오릅니다. 건설 현장에 오셔서 환하게 웃으시며 안수해 주시던 모습, 공장에 오셔서 둘러보실 때 진한 향취가 진동하던 일, 기장신앙촌 1동 건물에서 생명물을 축복하시던 모습……. 아낌없이 주시는 은혜 속에서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 귀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못한 제가 한없이 부끄럽지만 매일 새벽 기도드리며 다시금 힘을 내 봅니다. 그 은혜 간직하며 가르쳐 주신 대로 맑고 바르게 살아가겠습니다. 자유율법을 지키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신자 집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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