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윤 전직 관장 편 ⑨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끝없는 수고와 고생

박한윤 전직관장(9.끝)
발행일 발행호수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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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70년 3월 기장신앙촌 1동 건물 슬래브 공사하는 모습.

1968년 4월 18일자로 부산전도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부산전도관(경남도관)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여기시던 곳으로 오실 적마다 많은 교인들을 안찰해 주셨습니다.

어느 교인이 사위를 전도하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그래서 그 교인의 노력으로 사위가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위는 유도 선수에다가 장대한 체구를 가졌습니다. 그 사람은 안찰을 받으면 몹시 아프다는 말을 듣고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나’ 하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찰하시려다가 “이것 안 되겠는데” 하시면서 붙잡으라고 하셔서 두 사람이 붙들었는데 그것도 안 되어서 네 사람이 붙잡고 겨우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겨우 일어나서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죄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부산전도관에 오실때마다 교인들에게 안찰을 해 주시던 하나님,
너무 고통스럽게 안찰받던 사람에게 `죄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라고 말씀

또 부산전도관에서 교역할 때 세 번이나 단이 막혀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은혜가 막히면 찬송이 되질 않습니다. 설교 30분간 조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다. 제 얼굴은 검게 되고 밥맛도 없었습니다. 잠도 제대로 오질 않아 저는 무조건 서울에 있는 집으로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때문에 은혜가 막혔는지 수십 번 수백 번 생각하면서 음식도 먹지 않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애원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70평생에 자식이 가슴치며 울부짖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한탄하셨습니다. 서울에 가면 남영동에 제가 가끔 들르곤하는 빵집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늘 가면 반갑게 대해 주곤 하였습니다. 은혜가 막혔을 때 그 빵집에 무엇 좀 사려고 갔을 때 그 주인은 저를 보고는 뒷걸음쳐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거울로 제 얼굴을 보니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일주일만에 저의 잘못된 마음을 발견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주일만에 은혜가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이틀이 지나니 얼굴이 전과 같이 되었고 저는 은혜가 이렇게도 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역생활 중 은혜가 막혀 찬송이 되질 않아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고 울부짖어
은혜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

서울 어느 중앙 관장님이 기장신앙촌 건설 당시에 내려오셔서 저에게 부탁하기를 은혜가 막혔으니 하나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벌써 경험하였기 때문에 말씀드려서 될 문제가 아니고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은혜가 막힌 가운데 세상을 뜨면 영 피어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은혜가 막힌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1970년 2월 기장신앙촌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건설자재를 구입해야 하는데 제 손에는 현금이나 당좌수표가 없었습니다.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우선 외상으로 사자고 마음 먹고 밤새껏 고민하고 기도하다가 그 다음날 큰 마음먹고 건재상에 가서 신앙촌에서 왔으니 외상으로 물건을 달라고 하자 선뜻 가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20여 곳에 들러 주문하였는데 다 별 말 없이 주는 것이었습니다. 5일 후에 물건 값을 당좌수표로 갚아주니 오히려 모두다 고마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비행기로 서울서 부산까지 40분이면 도착합니다만 그때는 프로펠라 비행기로 1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요일을 제하고는 주 6일 비행기로 늘 수영비행장에 도착하시어 기장으로 향하셨습니다. 저녁에는 다시 비행기로 덕소로 향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방한복을 입으시고 건설현장에 나가셔서 직접 진두지휘 하셨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라 하셔서 옆에 서게 되었습니다. 방한복에 먼지를 듬뿍 쓰고 계시면서 내가 속이 타서 어떤 때는 콜라 한 박스를 다 마신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콜라 한 박스면 24개입니다. 식사를 제대로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을 마치고 들어와서 하나님의 노고와 수고하심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토록 눈물겨운 고생을 직접 하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소사, 덕소신앙촌 건설하실 적에는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기장신앙촌 건설하실 때는 제가 옆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습니다.

우리 전도관 역사는 눈물과 고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온갖 고통을 당하신 그 고마움을 뼛속에 새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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