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⑩ 유계마을에서 일어난 기적

죽을 날 만 기다리던 말기 암 환자가 생명물로 살아나다
발행일 발행호수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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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생명물의 권능으로 말기암 환자가 살아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현장인 경상남도 거제군 하청면 유계리 마을 2.생명물로 말기암을 치료한 경과를 자세히 기술한 보고서. 당시 심 관장이 작성한 것이다.

10. 유계마을에서 일어난 기적
환자를 찾아왔다고 인사를 드리는 제게 주인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다 죽어 가는데. 3일 전까지 하청 장로교회에서 계속 와서 예배를 봤는데 결국 병을 고치기를 포기하고 갔소. 소용없으니 돌아가시오.” 저는 그에게 “그렇습니까. 그래도 전도관 교인들이 여기까지 왔으니 환자를 한번 보기나 합시다.”라고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시종일관 퉁명스럽던 주인은 “저쪽에 있으니 보려면 보시오”하면서 환자가 있는 방을 가리켰습니다. 환자는 주인의 며느리인 최남숙씨였습니다. 최남숙씨의 병명은 말기 상피증(자궁암)이었습니다.

다 죽어가는 환자 찾아가
환자가 있는 방안에 들어가 보니 온기는 없고 싸늘했습니다. 우리가 그 환자 댁을 찾아간 때가 3월 초순이어서 아직 추운 날씨였는데도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라고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이불도 아닌 가마니로 며느리를 덮어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하고 주인의 무지를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저와 우리 교인들에게 시끄럽다며 환자를 다 봤으면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교인들에게 누워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환자에게 하나님께서 병을 고칠 수 있게 특별히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먹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교인들이 크게 놀라면서 “큰일 납니다. 보아하니 살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지금 생명물을 마시게 했다가 혹시나 죽기라도 하면 전도관에서 물 먹여 죽였다고 역사할 것이 뻔합니다. 관장님은 발령 받아 덕곡전도관을 떠나시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면 여기서 못 삽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생명물 먹고 조금씩 호전
그 말을 들은 저는 “무슨 말씀입니까? 이 물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입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물이 바로 이 생명물이란 말입니다”하고 들고 간 생명물을 그릇에 따라 환자에게 먹였습니다. 환자는 힘이 없어 생명물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빨대를 꽂아 빨아서 먹어보라고 했더니 조금씩 빨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오전, 오후 하루 두 번씩 덕곡에서 유계마을까지 교인들과 함께 재를 넘어다니며 환자에게 생명물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이 찬송을 못 부르게 하여 갈 때마다 다만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환자 가족들 모두 놀라
그 후 3일간은 아무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4일째 오후부터 꼼짝도 못하던 환자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이 환호했습니다. “관장님, 이것 좀 보세요. 손가락이 움직입니다.” 손, 발이 움직이고 돌아간 오른쪽 눈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힘이 나서 주인이 막든 말든 교인들과 있는 힘을 다해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일주일 후 환자는 우리들과 함께 손뼉을 치며 예배를 드릴 정도로 점점 기력을 찾아갔습니다. 퉁명스럽기만 했던 최남숙씨의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등 온 가족들은 그때부터 우리들이 찾아가면 크게 반기기 시작했습니다.

말기암 선고를 받고 임종을 눈앞에 둔
환자에게 하나님께서 병 치료를 위해
특별히 축복하신 생명물을 먹이자
4일째 되던 날부터 소생하기 시작해
7일째는 일어나서 같이 손뼉 치며 예배

기력이 생겨 조금씩 말도 할 수 있게 된 최남숙씨는 어릴 적 친정인 부산에 살 때 전도관 주일학교에 나간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관에서 올 때마다 먹여 준 생명물로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귀에 멀리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리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저희들이 생명물을 가지고 온다고 했습니다.

거동도 못하는 환자 살아나
그런데 얼마 후 최남숙씨 집을 갔더니 최남숙씨가 없었습니다. 시아버지인 주인에게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며느리의 몸이 회복되고 있어서 아무래도 시댁보다 친정이 마음도 더 편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더 챙겨 줄 것 같아 부산 대연동에 있는 친정에 보냈다고 했습니다. 거제도에서 부산까지 3시간이나 배를 타고 가야하는데 아직 발에 힘이 없어서 고무신 신은 발을 끈으로 묶고 지팡이를 짚고 배를 타러 갔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경과보고서 올려
당시에는 병을 낫게 축복을 해주신 특별 생명물로 병이 나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드리곤 했었는데, 그중에 괜찮다고 선정된 것은 신앙신보에 실렸습니다. 저도 이 일의 경과를 다음과 같이 작성하여 보고를 드렸습니다.

‘생명물로 자궁암을 치료한 보고서’

“경남 거제군 하청면 유계리 서항부락 1158번지 박종규(36세)씨의 처 최남숙 장로교인은 1978년 10월 임신 중 자연 유산으로 병마와 싸우기 시작하여 거제도 고현병원, 진해 박산부인과 및 여러 병원과 마산 마티마 병원, 제일병원 등을 다니며 치료 중 1979년 12월 혼수 상태로 부산 백병원에 입원 하였으나 차도가 없어 1980년 1월에 재입원하여 복음병원에서 X선 촬영을 해 보니 혈관이 터져 오른쪽 뇌수술을 하였으나 왼쪽 팔다리는 완전히 마비되고 대소변도 못해 호스로 받아내며 오른쪽 눈도 돌아가고 고통은 계속되며 하혈은 너무 심하여 항문으로 썩은 피가 수없이 나와 혼수상태가 계속되었는데 이때 백병원에선 상피증(자궁암이 터져서 피가 온몸에 퍼졌다함)으로 진단하였답니다.
지금까지 치료비만도 300만원이 들었으며 앞으로도 9주간 600만원 이상 들어야 한다는데 그것도 생사가 불투명하므로 거제도 본가에 와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 1980년 3월 11일 하나님 축복하신 솜과 생명물로 하루에 2회 사용하였습니다. 저희들이 간지 3일전까지 장로 교인들이 와서 예배를 보고 갔으나 허사였고 저희들도 처음 환자를 볼 때 너무 처량하고 금방 죽을 것만 같아 포기할까 하다가 겨우 시작하였으나 3일간은 별차도가 없고 환자 가정에서도 암은 ‘살릴 수 없다’하여 예배도 못 보게 하여 힘없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4일째 오후부터 갑자기 차도가 있기 시작하여 환자가 달라지며 힘이 나기 시작하였고 손, 발 마비된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며 돌아간 오른쪽 눈도 정상이 되어 우리가 매일 찾아가는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던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박씨 등 온 가족은 5일째부터 적극적으로 예배를 보게 하며 각별히 인사도 하며 7일째 되던 3월 17일은 환자가 저희들과 같이 앉아서 손뼉을 치며 예배를 보게 될 정도로 호전 되었습니다.
1980년 3월 20일
덕곡전도관 관장 심광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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