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⑨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는 종교

'자, 봐라 하나님의 신과 예수의 신이 어떻게 다른지'
발행일 발행호수 2348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1.장로교에서 학생반사를 하던 두 여학생(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을 전도한 것을 기념하여 찍은 사진. 2.거제도 덕곡전도관 반사들과 어린이들

9.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는 종교
덕곡전도관 집사님과 자기들의 자리를 바꾼 후에 뻣뻣하던 시신의 다리가 확 피어 노곤노곤해진 것을 본 기성교회 반사들은 깜짝 놀라 얼굴이 새카맣게 질려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자, 봐라. 너희들 속에는 예수의 신이 흐르고 전도관 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역사하시는 그 결과가 이렇게 드러난 것이다.” 함께 있던 교인들도 그 광경을 보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크신 권능에 놀랐습니다.

이춘배 휴직 전도사는 살아계실 때보다 더 예뻐진 모친의 시신 모습을 보며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경남 마산에 사는 이 전도사의 누나가 왔습니다. 불교신자인 누나는 집 마당에 들어서면서부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친의 시신이 있는 방에 들어오더니 엄마를 부르며 방바닥을 두들기고 아까보다 더 큰소리로 우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이 누나를 붙잡고 울면 고인에게 안 좋으니 울지 말라고 위로를 했지만 “우리 엄만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며 뿌리쳤습니다.

생명물로 아름답게 핀 시신 앞에서
불교신자인 고인의 딸 대성통곡하고 울자
순간 시신의 입과 코에서 썩은 물이 나와
다시 생명물로 씻어 입관을 했지만
처음처럼 예쁘게 피지 않아

그런데 그 순간 시신의 입과 코에서 썩은 물이 나오면서 송장 썩는 냄새가 확 풍겼습니다. 그 상황을 지켜 본 저와 덕곡전도관 교인들, 장로교 학생 반사들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게 피어 환했던 시신이었는데, 만지지도 않고 고인의 딸이 방바닥을 치며 막 울기 시작 했을 뿐인데 대번에 시신이 무섭게 변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밖에서 손님 접대를 하고 있는 이춘배 휴직 전도사를 불렀습니다. 방에 들어와 벌어진 상황을 보고 이 전도사는 너무 놀라고 화가 나 누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후 이춘배 휴직 전도사는 다시 입관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저와 우리 교인들은 시신을 다시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찬송을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처음처럼 예쁘게 피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살에 상처가 났다가 아물어 딱지가 떨어졌을 때 그 흔적이 남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저는 장로교 학생 반사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전도관에 나와라. 너희들 마음속에 있는 예수의 신은 썩는 신이다. 불교든 기독교든 전도관 외에는 전부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직접 보고 확인하지 않았느냐!”

장로교 반사 전도되다
생명물로 시신이 핀 모습을 본 기성교회 반사들은 그때부터 열심을 내며 덕곡전도관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먼 거리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반사들은 처음에 경운기로 덕곡전도관에 태워다 준 동네 오빠의 도움으로 장로교에 다니던 마을 주일학생들까지 모두 인도하여 수요일에도 주일저녁에도 경운기로 아이들을 덕곡전도관까지 태워왔습니다. 경운기를 타고 아이들이 오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정성껏 준비한 간식을 먹여 보냈습니다. 한 번에 다 올 수 없어서 경운기로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했는데 하루에 몇 번씩 하다 보니 밤중까지 예배를 드려야했습니다. 그래도 늘어나는 아이들을 보면 마냥 기쁘고 즐겁기만 했습니다.

1979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덕곡 마을 이장 집에서 방송이 나왔습니다. “최 선생님, 빨리 집에 가보세요. 애기가 다쳤습니다. 빨리 가세요.”
덕곡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최 선생님의 아이들 중, 학교에 안 다니는 어린 여자 꼬마가 있었는데 집에서 동네 아이들과 같이 작두를 가지고 놀다가 손가락이 잘렸던 것입니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는 다급한 상황이라 최 선생님은 군 의무병으로 있다 제대한 사람을 찾아가 응급처치로 다 떨어진 아이의 손가락을 겨우 꿰맨 후 저를 찾아왔습니다.

“관장님, 어떡하면 좋습니까?” 우리 전도관 집사님인 최 선생님께 저는 걱정 말라고 안심시킨 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아이의 손가락에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었습니다. 생명물을 바르기 전까지 아프다며 발버둥을 치던 아이는 생명물을 발라주니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그 후에도 아이는 생명물로 손가락 치료를 계속 했습니다. 며칠 후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아이의 손가락을 본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의 권능에 크게 놀라워했습니다.

교역자들에게 주신 책
1979년 9월 24일 축복일에 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국의 교역자들에게 ‘이스라엘 정신’이란 책을 나눠주셨습니다. 또 교역자 및 전도파트 세미나에서는 데일 카네기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는 책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 책은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1980년 2월 24일 축복일에는 제14회 전도 생산 판매 경진대회가 있었는데 이 대회에서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많이 한 사람, 목표 이상 생산한 공장, 신앙촌 제품을 많이 판매한 소비조합원들에게 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교역자들에게 고급 양복천과 금일봉을 하사 하셨는데, 늦게 교역생활을 시작한 저는 이 날에 해당되어 하나님께 양복천과 금일봉을 받았습니다. 그 때 주신 양복천으로 만들어 입은 양복은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가지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을 무척 기뻐하시고 좋아하셨던 하나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생명물을 들고 환자에게
당시 하나님께서는 전국 교역자들에게 병을 다스리는 특별 생명물을 한 통씩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협회에서 저에게만 생명물 두 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제도 심광수 관장은 두 통을 가져가라고 하셨습니다.”는 말과 함께. 그 후 특별 생명물로 병이 나은 사람들의 기사가 신앙신보에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생명물을 두 통이나 받았는데 덕곡전도관에서는 쓸 일이 없었습니다. 교인들에게 환자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광고를 했지만 환자를 찾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0년 3월 11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니 교인들이 환자가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을 드시고 교회로 모이시오. 다 같이 환자한테 같이 가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환자는 덕곡리가 아니라 재를 하나 넘어가면 있는 유계마을에 있었습니다. 교인들과 생명물을 들고 재를 넘어가는데 온 천지에서 까마귀가 다 달려들었습니다. 교인들도 저도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의 권능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빠른 걸음으로 재를 넘어 갔습니다.

유계마을에 도착하여 환자가 있는 집을 찾아가서 “안녕하십니까. 저는 덕곡 마을에 있는 전도관 관장입니다. 환자가 있다고 해서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