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⑪ 박동식 집사 새벽기도 대소동
11.박동식 집사 새벽기도 대소동생명물로 병이 호전된 최남숙씨에 관한 보고서를 올려 드린 후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이 안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축복일이었습니다. “거제도 심광수 관장님 전화받으십시오.” 협회에서 전화를 받으니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마디의 말씀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 사람 죽는다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러오는 하나님 음성은 언짢으신 듯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알 수 없었던 저는 속으로 ‘우리 교인들 중에 누가 돌아가시나?’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기성교회 가서 죽어
그후 1980년 6월 7일 부산 10중앙 범천 전도관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최남숙씨에 관한 보고서를 올린 지 3개월만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발령이 나자 그제서야 최남숙씨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관장님이 거제도를 떠나시니까 이제 말씀드려야겠네요. 최남숙씨가 죽었습니다.” 천청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네? 왜 죽어요?” 하고 놀라니 교인들은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제게 해 주었습니다.
몸이 좋아진 최남숙씨가 친정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기 위해 부산에 가게 되었는데, 문제는 최씨의 남동생이 “교회에서 누나 목숨을 살려줬으니 교회에 나가자”고 한 것이 그만 자기가 다니고 있는 대연동에 있는 기성교회를 찾아 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생명물로 몸이 나았지만 아직 분별력이 없던 최씨가 기성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어 마침내 거제도 시댁에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상황을 아시고 제게 그렇게 전화를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신으로야 하리니…`
인간이 어떤 수양을 해도 죄를 씻을 길이 없어
1980년 6월 7일 발령받은 부산 10중앙 범천전도관은 산언덕 위에 자그마하게 교회가 있었습니다.
범천전도관의 부인회장은 아주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성품을 지닌 강금옥 권사(現 태백교회 여성회 관장)였습니다. 강 권사님은 당시에 장사를 하면서 신앙촌 제품도 함께 팔았는데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갈 때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어린 딸과 함께 항상 제단에 들러 기도를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 권사의 딸아이가 귀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보니 귀에서 고름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생명물로 귀를 치료해 주었는데 며칠 후 귀가 다 나아 밝아진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일 새벽예배 나오시오`
범천전도관에 발령 받은 지 석 달만인 1980년 9월 4일 다시 저는 부산 5중앙 온천장전도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온천장전도관은 범천전도관보다 교인도 많고 규모도 좀 큰 교회였습니다.
부임 후 가장 먼저 교인들의 사정과 형편을 알기 위해 교인들과 심방부터 다녔습니다.
함께 심방을 다녔던 교인들 중 이양순 집사님이라고 계셨는데 교인들 가운데 젊은 편에 속했습니다. 저는 이 집사님께 “집사님 남편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우리 집사님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 남편분이 왜 집사님입니까?”하고 물어보니 이집사님과 남편분이 고향(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있을 때 전도관에 다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받은 남편의 성직이 집사였는데 부산으로 이사온 뒤로는 전도관에 안 나온다며 속상해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박동식 집사님! 전도관 집사가 이사 가면 교회에 안 나오는 겁니까? 내일부터 당장 새벽예배 나오십시오.”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란 박동식 집사는 다음날부터 새벽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마음을 닦는다고 하면서
당시 박동식 집사님 내외는 부산 금정구 팔송에서 ‘동명기계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박 집사님이 새벽제단에 나오면서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세탁소 고객 중에 근처 사찰에서 책임자 격으로 있는 승려 세 명이 있었는데 그 승려들은 박동식 집사님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한 달에 여러 번, 그것도 밤에 와서는 입고 온 승려복을 벗어놓고 세탁소에 맡겨놓은 양복으로 갈아 입고 넥타이 매고 가발을 쓰고 택시를 타고 시내 요정집으로 가곤 했답니다. 그리고 밤새 술을 먹고 놀다가 새벽이면 세탁소에 와서 다시 승려복으로 갈아입고 새벽 염불을 위해 절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박동식 집사님에게 교회에 나오라고 전화를 건 다음 날 박 집사님이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세탁소를 비운 사이 밤새 술마시고 놀다 온 승려들이 새벽에 승려복으로 갈아 입으러 세탁소에 왔는데 세탁소 문이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새벽 염불 시간은 다가오고 다급해진 승려들은 그 새벽에 세탁소 문을 두드리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이웃들이 “이 새벽에 시끄러워서 잠도 못자게 당신들 뭐하는 짓이냐?”하고 소리를 치자, 승려들은 미안해하기는 커녕 세탁소에 옷 찾으러 왔다며 세탁소 주인 어디 갔냐고 묻더란 것입니다. “세탁소 주인은 오늘 전도관에 새벽예배 드리러 간다고 했다.” 이웃의 말을 들은 승려들은 그 뒤 박 집사님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다시는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박 집사님 세탁소 앞 육교를 건너가면 ‘팔송서점’이라는 작은 서점이 있었습니다. 서점 주인은 온천장전도관에 다니는 배매자집사님이었습니다. 배집사님이 운영하는 서점 고객 중에도 승려가 있었습니다. 그 승려는 월간지 등 책을 자주 사가곤 했는데, 동네에 있는 작은 서점이다 보니 매달 여러 권의 책을 사가는 승려는 서점을 드나드는 고객중 큰 고객이었습니다.
어느 날 서점을 자주 오던 승려가 배매자 집사님에게 할 말이 있으니 다방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배집사님은 어떤 부탁인가 싶어 다방으로 갔답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나온 배집사님께 승려가 차를 사주면서 은근히 본색을 드러내자 그제서야 승려의 흑심을 안 배집사님은 “뭐 하시는겁니까? 전도관 교인들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하고 냅다 소리를 쳤답니다. 그랬더니 승려가 “전도관? 아이고 전도관은 안 된다. 워낙 신앙교육이 철저한 사람들이니…”라고 하며 손사래를 치고 도망을 가더란 것입니다.
성신이 아니면 안돼
세속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마음을 닦는 수양을 한다는 사람들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탈선과 비행에 빠진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성신을 받지 못하는 모든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저는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