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27) 구원을 위한 노력은 헛된 것은 없다

합창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기를 바라심
발행일 발행호수 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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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85년 1월 29일 하나님께서는 최고위원 7명과 두 사람을 더 부르셔서 안찰을 해 주시고 확정권에 대한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확정권에 들었다는 것은 앞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에 갈 수 있는 영적 자격이 어느 선까지 올라온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확정권에 드는 것

“가지들이 영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계산하고 점수를 매기고 있다. 그러나 확정되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점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까 큰 죄 하나만 지으면 떨어진다.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남자 교인과 여자 교인의 숫자에 비해서 여자가 적은 편이다. 열심히 하는 자는 성신이 체크하는 고로 정확하게 한다. 확정된 수에 대해서는 오늘 처음 말했다. 실수하면 점수가 감하게 된다. 하나님을 위한 공로라는 것은 헛되게 돌아가는 것이 없다. 성신이 정확하게 채점한다. 확정된 14만 4천명은 전 세계에 다 있다. 확정된 자는 하나님의 영적 분신이 은혜를 입히고 있다. 꿈으로 깨우치는 자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도 설교하시는 중에 확정이라는 말씀을 몇 번 하셨는데 확정된 사람의 수를 발표하신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인의 수에 비해 여자들의 확정된 수가 적다고 지적하셨는데 1983년 8월 1일 축복일에 “여자가 남자보다 구원 얻기 쉽다고 게을리 하면 남자보다 뒤질 자 많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구원 위해 노력하는 것 점수 매기고 있다
하나님을 위한 공로는 헛된 것이 없어
영원한 세계에 갈 수 있는 자격을 말씀해 주셔

하나님께서는 합창 활동을 많이 장려하셨는데 그것은 합창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1985년 2월 27일에는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시온합창단의 제16회 정기연주회 신춘음악제가 열렸습니다. 지금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도 큰 공연장이 많지만 700여 명이 넘는 합창 단원이 무대에 서려면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었던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 부산 연산동교회와 대신동교회 교인들도 합창 공연을 보기 위해 대도고속관광버스를 대절해서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1985년 3월 31일 시온합창단 부산 초청 연주회가 부산시민회관에서 있었습니다.

1985년 6월 10일은 부산 연산동 교회 주일학생들과 부산 금강공원으로 소풍을 간 날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교회 출석률이 들쑥날쑥 하는 것은 대동소이합니다. 아이들을 꾸준히 교회에 나오게 하고 또 많은 아이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하는 중에 이번에는 아이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주일 전도 목표를 정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면 부산 금강공원으로 소풍을 간다고 한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하여 목표를 달성하고 금강공원으로 소풍을 간 날 저와 부관장들은 아이들을 위해 똑같은 모자를 준비했습니다. 소풍을 나온 아이들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신나게 놀고 맛있는 도시락과 간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도를 위한 고민

1985년 6월 20일 그날도 어김없이 김상문, 남삼호 부관장들과 교인들 가정에 심방을 다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산 동래구 동산동에 사는 정화영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가니까 집사님 어머니인 신복련 권사님이 와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와 계시냐고 신 권사님께 물어 보니 그날 아들 정화영 집사가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 집사의 사망 소식을 들은 저는 부관장들과 함께 장례 준비를 하고 시신을 생명물로 씻겨서 입관을 시키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22일, 신 권사님은 기장 협회에 죽은 아들을 위한 축복을 신청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와서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주로 말씀을 드리는데, 다음 달 축복일인 7월 17일까지 20여 일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까지 시일이 많이 남아있어 저는 일단 협회에 신청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23일, 장지인 진해 천자봉 공원묘지로 가는데 유족 가운데 신 권사님의 셋째 사위인 부산 남부경찰서 형사 조용년 씨가 그 날 밤 꾼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죽은 처남이 예쁘게 화장을 하고 하얀 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조용년 씨는 장모인 신 권사님 때문에 간혹 신앙촌의 큰 행사 때만 참석하지 천부교인은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신복련 권사와 우리 교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축복 신청만 하여도 다 아시고 고인의 영혼에 축복을 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하늘의 은혜를 받은 것이라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천부교 신앙체험기에도 가끔 흰옷을 입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묵시록 3장 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를 이기지 못해서 죽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시면 그 죄를 씻어 그 이름을 기억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합창 역사상 유례가 없는 1,500여 명 단원
시온합창단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합창
합창은 많은 사람을 전도하기 위한 것

1985년 7월 5일 저는 재단법인 한국천부교전도관유지재단 감사로 선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5년 8월 21일 시온합창단 제17회 정기연주회 청소년 하계 음악회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있었습니다. 이 연주회는 우리 나라 합창 역사상 유례가 없는 1,500여 명의 단원이 무대에 올라 합창을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최고위원 7명과 그 외 몇 명의 간부들에게 음악회가 열리기 전보다 일찍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서울에 올라간 저희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서울 남산 중턱에 있던 서울 외교구락부라는 양식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그 당시 서울 시내에서 식사도 하고 회의도 할 수 있는 연회 장소 가운데 가장 크고 좋은 곳이었는데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 식사도 하고 하늘나라 말씀도 듣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업무일기를 쓰라

제가 교역일기에 쓰는 이야기들은 모두 몇 십 년 전의 일들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틈틈이 메모를 하고 업무일지를 썼던 것을 보면 그때 일이 확연히 떠오릅니다. 지금도 저는 후배 및 신규 교역자들에게 일상적으로 업무일기를 꼭 쓰라고 권합니다. 세월이 흘러 지난 업무일기를 돌아보면서 ‘몇 년 몇 월 몇 일 이날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구나. 했을 때는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죄송할 뿐입니다. 하루를 쉬었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하루를 후퇴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여러 날 쌓이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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