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춘 전직 관장 편 ④ ‘의심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이만제단 시절 그리고 첫 발령지 창녕제단
발행일 발행호수 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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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윤재춘 관장은 구제단에서 이만제단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철주야 365일 전국 제단을 순회하시면서 가지들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기 위해 초인적인 역사를 하시는가를 목격한다. 그리고 첫발령지 창녕에서 하나님 차에 동승했던 순간을 이야기 한다.

원효로 구제단이 비좁아서 청암동 이만제단을 친히 진두지휘하여 건설하실 무렵 윤재춘 관장은 당시의 놀라운 광경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이만제단은 입체적으로 영락교회의 12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영락교회만한 그릇으로 12번을 퍼 담아야 이만제단이 채워진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 교회로는 세계 최고로 큰 교회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도 몇 년에 걸려서 지은 것이 아니라 몇 개월 안에 어디서 원조 한 푼 받지 않고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만제단 종각 꼭대기에는 독일제 음악종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설치되었습니다. 그 음악종 소리는 조용할 때는 멀리 안양지역에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음악종을 설치하자 기성교회에서도 모방해서 음악종을 녹음해서 틀기 시작했습니다. 이만제단도 얼마 안 가서 1,2,3층까지 꽉 차게 되었고, 그 후에 1957년 입동이 지나서 소사신앙촌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년 365일 전국 제단을 순회하시며
은혜를 입혀주시기 위해 애쓰고 애쓰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어
초창기 하나님께서는 하루도 쉬실 날이 없이 1년 365일 전국 제단을 순회하시며 은혜를 입혀 주시기 위하여 애쓰고 애쓰셨다.

“일요일 새벽 예배는 인천제단을 시작으로 서울로 오시는 길에 부천제단에서 예배보시고 서울 구제단에서 낮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이만제단이 신축된 다음부터는 이만제단에서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급히 공항으로 나가시어 항공편으로 부산에 도착하여 적기 제단에서 예배를 인도하시고 저녁예배를 부산제단에서 보셨습니다.

다음 아침에 마산에서 예배를 인도하시고 대구로 가시는 도중에 남지제단에서 인도하셨습니다. 대구-경산-김천-대전-청주-안동을 거쳐 호남지방으로 향하시어 전주-광주-보성-여수-순천-목포를 마지막으로 토요일 저녁 때 서울 구제단으로 도착하시어 모여 있는 교인들 안찰하시고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잠깐 쉬셨다가 다시 인천-서울-부산 등을 반복하여 매주 전국을 순회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깔려 있는 것도 아니고 국도라도 비포장도로여서 노면이 고르지 않아 울퉁불퉁 덜커덕 거리면서 장거리를 왕래하셔야 했기 때문에 자동차 엔진성능이 좋아야 하고 또 차체도 튼튼하여야 했고, 소형차 가지고는 며칠을 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만제단에서 주일 낮 예배를 인도하시다가 병을 고쳐주시기도 하셨다.

“하나님께서 축농증이 있는 사람 중에서 남자 반에서 10명만 단상에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올라간 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쉭~쉭~쉭~’ 이마를 쳐 주시고 코를 만져주시며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마이크에 입을 대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큰소리로 ‘나았습니다!’ 혹은 ‘확~ 뚫렸습니다!’라고 간증하며 외쳤습니다. 그 광경을 주시하고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교인들은 박수를 치며 기쁨으로 환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한명만 낫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심하는 사람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바라고 의지하며 간절한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은혜를 입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천평같이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또 1957년 가을경 목포제단에서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실 때 강력하고도 크게 “감람나무를 해할 자 없다!”고 말씀 하시면서 강대상 책받이를 들어 내리치실 때 온 단상이 성신의 불성막으로 꽉 찼고, 그 불 가운데로 천사 3명이 움직이고 다닌 것이 완연하게 사진에 찍힌 것을 이만제단에서 사진을 보여주시며 설명해주시기도 하셨다고 윤 관장은 회고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구하는 정도에 따라
은혜입는 정도가 다르고 인간의 마음을
천평같이 저울질 하시는 것을 깨달아
윤재춘 관장이 첫 발령지인 창녕제단에서 시무할 때의 일이다. 윤 관장은 하나님께서 마산제단에 서시는 시간을 맞추어 예배를 드리러 갔었다.

“예배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창녕전도사 어디 있느냐고 찾으셔서 가서 뵈었더니 지금 대구로 가는 길이니 앞좌석에 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겁 없이 앞좌석에 올라탔습니다. 저는 속으로는 신이 났지요. 하나님차를 동승하고 가니 얼마나 신나고 설레었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철딱서니 없고 황송한 일이지요.

저는 대구까지 타고 갈 요량으로 ‘하나님 예배시간에 또 참석하겠구나’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가 창녕거리를 지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새벽제단에 안 서나?’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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