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이 은혜입은 천막집회 대구집회 (1955. 6. 9.~16.) 편(1)

기쁨의 근원이신 이슬성신은 한없이 내리고
발행일 발행호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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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집회

대구 수성천변에 가설된 천여평 천막에 은혜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1955년 6월 9일부터 16일까지 대구에서 다섯 번째로 천막집회가 개최되었다. 대구 칠성동 천변 사장(沙場)에 가설된 대형 천막집회장은 연일 연야 만원을 이루었고 이곳에서도 변함 없이 한없는 하늘의 은혜가 임하였다. 참 길을 찾은 신도들은 거리와 시간을 초월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당시 대한장로회 부산진 교회의 김성여 목사는 부산집회에 이어 대구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 경험」이라는 설교집을 집필하여 간행하게 된다. 이로서 서울, 안동, 부산, 대구의 4대 도시에는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가 ‘요원의 불길처럼 충천하여 연소하기 시작했다.’

양성일 승사(74.전직교역자)는 대구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중 하나이다.

그는 군에서 당한 사고와 폐결핵으로 폐인이 되었다가 대구집회를 계기로 새 삶을 얻어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데 일생을 바치게 된다.

양성일 승사(74. 소사신앙촌)는 지병인 폐결핵을 치료하려고 당시에 유명하였던 용문산의 나운몽 장로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실망하고 말았다.

“제대 후 전혀 가망이 없다고 단정한 제 병을 고쳐 보려고 백방으로 찾던 중 나운몽 장로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김천에서 약 16Km 떨어져 있는 용문산 기도원에서 일주일간 기도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 때에 정신병자를 고친다며 나운몽 장로가 안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신병자가 안수를 하려는 나운몽 장로의 손을 입으로 물어뜯는 것을 보고 이곳도 가망이 없다 생각되어 하산하였습니다.”

폐병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절망하던 양승사는 우연히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 부흥회’의 벽보를 보고 마지막 희망을 걸게 된다.

“그 후 병이 점점 악화되어 폐병을 잘 고친다는 대구시 범어동 소재의 구로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별다른 차도가 없고 기침을 할 때마다 각혈을 하여 ‘이젠 정말 죽게 되었구나!’ 하며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병원 안에 있던 교회의 벽보판에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 부흥집회’라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포스터를 보고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주위 사람들로부터 하나님 집회에 참석해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쳤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집회는 대구시 칠성동 개천가에 천막을 치고 열렸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저도 참석하여 부흥집회 7일째 되던 날 새벽예배 때에는 간신히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처음 뵈었던 하나님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곤 합니다. 그때에 찬송가 64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를 계속 부르신 후에 병자들은 일어나 뛰라고 외치셨습니다. 그 음성은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였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기뻐 뛰며 좋아하였으며, 병 나은 사람은 앞에 나와 간증하라는 말씀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천사와 같고 그의 음성은
성신이 충만하여 사람 마음을 끌어”

그들 중 폐병 3기라고 하는 사람이 2장의 X-ray 사진을 들고 나와 폐에 동공이 많이 있던 것이 이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다 나아 이제는 동공이 없어진 폐 X-ray 사진을 보여 주며 감쪽같이 완치되어 담당 의사도 매우 놀라워했다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 간증은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저도 은혜를 받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군 병원에서 같은 병을 앓았던 이종선이란 친구를 전도하러 충북 옥천에 있는 그 친구 집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얘기하고 밤이 되어 같이 잠을 자게 되었고, 꿈에 하나님이 대구 집회 때의 모습 그대로 오셔서 저에게 ‘쉭- 쉭-’ 축복을 해 주시는데 이슬 같은 뽀얀 것이 저의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꿈이었지만 너무 기쁨에 넘쳐 할렐루야! 할렐루야! 영광을 돌리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중병을 고치려는 일념 끝에 대구집회에서 하나님을 만난 양승사, 그는 은혜를 받고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도 거듭나 교역자로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전하는데 일생을 바치게 된다.

“그리고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저에게 그토록 큰 기쁨을 주시는 분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아나 서울 원효로에 있는 이만제단을 찾아갔습니다. 지방 순회 중이시라 안 계셨지만 저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던 장규원 집사님 댁에 잠시 머물며 새벽예배에 참석하여 저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1956년 10월경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내일 아침은 하나님께서 단에 서신다는 소식을 듣고 맨 앞자리에 앉기 위해 철야를 하며 기도를 하고 있는데, 시간이 되어 하나님께서 나오시더니 192장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저도 왠지 기쁘게 찬송을 부르는데 어디선가 박하 냄새 같기도 하고 바나나 냄새 같기도 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한 향취가 맡아지더니 조금 더 예배가 계속되자 생명물이 마셔지는 것처럼 배 속이 시원해지며 온몸이 공중에 뜨는 기분으로 새처럼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체험은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처음 느껴지는, 정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한한 체험이었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안찰도 해 주셨는데 그때 저는 처음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안찰은 하나님 사택에서 해 주셨는데 직접 뵈오니 모습은 천사와 같이 희고 “어서 들어오십시오.” 하는 음성은 성신이 충만한,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그런 음성이었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안찰을 받는데 하나님의 두 엄지손가락이 제 눈에 닿기도 전에 눈알이 빠져나갈 듯이 아팠으며, 배, 옆구리를 안찰받을 때는 온몸이 용광로에 들어간 것같이 뜨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슴과 머리를 두세 번 세게 치시고는 “됐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저의 병이 다 나았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실제로 전에는 움직이기만 하여도 숨이 찼는데 이젠 힘껏 뛰어 봐도 전혀 불편함이 없으며 내가 언제 폐병을 앓았나 의심이 날 정도로 완쾌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으니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요즘도 가끔 혼자 소리 없이 울곤 합니다. 혼자 월남하여 폐병으로 죽을 목숨을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신 은혜 고맙고 감사하여 날마다 눈물로 감사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 원하시고 외치셨던 그 높으신 뜻에 어긋남이 없는 생활이 되도록 하루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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