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도시락은 누가 다 만들었을까?

발행일 발행호수 2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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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에서 이슬성신절이나 추수감사절, 체육대회 등 천부교의 큰 행사가 있는 날에는 언제나 두둑한 도시락 가방을 받았다. 윤기 흐르는 찰밥에 고급진 반찬, 디저트와 과일까지 있어서 받으면 기쁘고, 먹고 나서는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어릴 때는 감사한 줄도 모르고 받았는데, 지금은 도시락들이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해졌다. ‘이 많은 도시락을 신앙촌에서 만드는 걸까? 에이 설마, 도시락 업체에 단체 주문했겠지…’ 그러나 정답은 첫 번째였다. 신앙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지는 절기 도시락!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 갓 구워져 나온 단호박 쿠키.

# 시나몬 향 솔솔~ 단호박 수제 쿠키

가장 먼저 만든 것은 단호박 시나몬 수제 쿠키다. 신앙촌 베이커리에 도착하자마자 달콤하고 고소한 쿠키 냄새가 배경음악처럼 주위를 감쌌다. 주방에서는 오전 봉사팀 사람들이 쿠키를 만들고 있었다.

부랴부랴 위생모와 마스크, 위생 장갑 등을 착용하고 자리로 갔다. 우리가 할 일은 기계가 해놓은 반죽을 정량대로 잘라 동그랗게 빚은 후 쿠키 모양이 되도록 꾹 눌러주는 것.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오는 노릇노릇한 쿠키들을 보니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간식으로 맛있는 아이스바를 주셔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 입맛 돋우는 매실&곶감 장아찌

▲ 매실 장아찌 위에 곶감을 올리고 있다.

종합식당으로 향하는 길. 문을 열자 “여러분, 곶감은 예쁘게 위에 올려주세요~!” 하는 종합식당 박진미 차장님의 경쾌한 목소리가 식당 내에 울려 퍼졌다.

오늘은 매실과 곶감으로 만든 장아찌를 용기에 담기로 했다. 매실을 아래 깔고, 곶감은 위에 꽃처럼 펼쳐서 얹으라 하셨다.

장아찌는 빨갛고 반짝이는 것이 참 예뻤다. 스테인리스 집게로 한 알 한 알 집어 투명 용기에 담으니, 보석 세공사가 되어 브로치 위에 루비를 올리는 기분을 느꼈다.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느릿느릿 섬세하게 장아찌를 눌러 담고 있는데, 옆에서 지긋한 시선이 느껴졌다. 반찬 뚜껑을 닫아주시는 권사님이셨다. 말없이 인자하게 미소 짓고 계셨지만, 나는 그 미소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읽었다. ‘딴생각 말고, 집중하세요.’ 그 후로 신속 정확하게 장아찌를 담고 스피드하게 봉사를 마무리했다.

# 김치보다 맛있는 야채초절임

▲ 다음 중 윤 기자가 담은 것은? 정답은 본문에.

절기 도시락은 같은 듯 매번 다르다. 메뉴 선정에도 무척이나 심혈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번에는 김치 대신 상큼한 야채 초절임을 준비했다. 우엉, 당근, 양배추를 적절하게 섞어 담았다. 열심히 초절임을 담는데, 박진미 차장님이 오셔서 예쁘게 담는 법을 알려주셨다.

양배추 위에 당근 두 조각을 얹고, 그 위에 우엉을 가지런히 올리니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아 보였다. 앞서 아무렇게나 용기에 담은 내 것과 크게 차이가 났다.

아차! 부끄러웠다. 내가 담은 반찬 용기에 초절임은 담겨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이 담기지 않았던 것이다. 반찬 하나에도 정성을 담아야 하는 것을… 깨달음을 얻은 후부터는 도시락에 마음을 담아 정성껏 포장했다. 받으시는 분들이 기뻐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말이다.

# 양질의 단백질, 랍스터와 떡갈비

▲ 파슬리 가루가 솔솔 뿌려진 랍스터 구이.

이번에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랍스터와 떡갈비를 굽는 작업. 랍스터는 원래 미국에서 굉장히 흔한 식재료였는데, 인기가 점점 높아지면서 현재는 바다를 대표하는 고급 해산물이 되었다고 한다. 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지방은 적고, 단백질, 키토산, 타우린 등 영양성분도 풍부하다. 반으로 자른 랍스터는 오븐으로 들어가기 전, 일일이 먹기 좋게 살 윗부분과 껍질을 분리했다.

둥글넓적한 떡갈비들은 줄지어 기다란 컨베이어 오븐 속으로 들어갔다가 반대편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나왔다. 따끈한 떡갈비와 랍스터는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포장했다. 반찬이 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하다 보니 온 몸과 옷은 물론 머리카락에도 음식 냄새가 잔뜩 뱄다. 그래도 좋다. 이슬성신절에 오신 분들이 맛있게 먹을 수만 있다면!

▲ 컨베이어 오븐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는 떡갈비들.

# 마지막 날, 도시락 합치기!

도시락 만들기 대망의 마지막 작업. 이작업에 가장 많은 봉사자가 투입되었다. 길게 늘어선 봉사자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도시락의 빈칸이 맛있는 반찬으로 속속 채워지면서 옆으로 옆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완성된 도시락들은 조금 떨어진 다른 테이블로 이동되었다. 거기엔 또 다른 작업라인이 있었다. 완성된 도시락과 함께 수제 쿠키와 오렌지, 음료, 물 등을 종이 가방에 넣어주는 팀이다. 차곡차곡 랙카에 쌓이는 하얀 도시락 가방들. 이 작업을 끝으로 도시락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 에필로그

봉사 중 즐거운 휴식 시간. 간식을 먹으며 옆에 있던 고등학교 1학년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절기 도시락 봉사가 처음이라는 그 친구는 “사실 편식이 심해서 반찬을 남겼었어요. 그런데 이제 절대로 안 남길 거예요”라고 했다. 단호한 표정과 말투에 웃음이 났다. 좀 전에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정성껏 장아찌를 담던 그 친구의 얼굴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바쁜 일손 거들고 싶어 십 년 넘게 도시락 봉사에 참여했다는 권사님은 “멀리서 오신 분들 시장하면 안 되잖아요. 부족함 없이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하고 웃으셨다. 그 말을 들으니 양이 적다며 반찬을 넘치도록 눌러 담아 박진미 차장님을 당황시켰던 권사님들이 떠올랐다. 따뜻하고 넉넉한 인심에 도시락을 먹지 않아도 이미 배부른 듯했다.

이번에도 도시락 만드느라 수고하셨을 베이커리, 종합식당 관계자분들과 봉사자들에게 그동안 못한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매번 정성껏 만들어주신 도시락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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