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이 관장 편 ① 첫 발령지에서의 추억

첫 발령지에서의 추억
발행일 발행호수 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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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신앙촌 군락지에서 물총게임을 즐기는 아이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믿으셔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천부교회를 다녔던 나는 생명물로 시신이 피는 내용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솔직히 잘 믿어지지 않았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본과 1학년 때 시체 해부 실습을 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은 시신을 만져 보게 되었다. 하얀 천으로 덮여 있던 시신을 보며 무섭고 겁이 났다. 부패를 막기 위해 방부처리를 했다고 하지만 도무지 사람 같지 않고 마치 나무토막 같았다. 어떻게 해도 움직여 볼 수 없이 뻣뻣하게 굳어있던 시신을 보며 ‘누구나 죽으면 결국 이런 모습이 되겠구나. 나도 이렇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해 겨울방학 때 나는 처음으로 천부교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생명물로 시신을 씻겨 드리고 입관한 후, 여성회 관장님께서는 고인의 얼굴을 보여주시고 고개도 돌려보시고 팔도 움직여 주셨다. 피부가 좋으신 할머니가 아주 편하게 낮잠을 주무시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신앙체험기에서만 봤던 내용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직접 만져보고 확인해보자.’
관 아래쪽(발쪽)에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버선이 신겨져 있는 고인의 발을 잡고 조심히 발목을 만져 보았다. ‘아~이럴 수가…’ 관절이 움직였다. 너무 신기해서 발가락 관절도 움직이는지 하나하나 조심히 만져보았다. 모두 움직였다. 죽은 사람의 발 같지가 않았다.
그 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의심할 수 없었다. ‘하나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꼭 하게 해 주세요.’

4년 후, 나는 학생관장이 되었다. 첫 발령지는 안성 천부교회였다. 예쁜 학생들을 데리고 매달 가는 축복일은 정말 즐거웠다. 축복일에 가기 전 일주일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민지, 할머니 팔순 잔치인데 축복일에 가겠다며 졸라서 허락을 받은 덕희, 엄마일을 잘 도와드리고 매달 축복일에 가던 예쁜 자매도 있었다.
신앙촌에 도착하면 신앙촌 여청이셨던 장은경 선생님이 매달 출석 체크를 하며 손수 만드신 맛있는 간식과 예쁜 생일선물을 챙겨 주셨다. 입사생 바자회 때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푸짐하게 사서 골고루 나눠 주셨던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축복일을 더욱 기다렸다.
축복일 예배를 마치고 안성에 도착할 때쯤 학생들이 배고파한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김교분 권사님은 매달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입장 휴게소에서 전화를 드리면 시골 마을 권사님 댁에서는 식사 준비가 시작된다. 대문을 여는 순간 구수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뛰어들어가는 아이들…. 정성 가득한 시골밥상에 둘러앉아 맛있게 식사하는 학생들을 보시며 땀이 송골송골한 권사님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침 예배를 드리고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또 교회에 오는 단짝친구가 있었다. 오후에 집에 갈 때, 꼭 신발주머니를 빠뜨리고 가길래, 잘 챙겨가라고 했더니 일부러 안 가져 간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피곤해서 오기 싫을 때도 있는데 신발주머니를 두고 가야 매일 아침 예배에 오죠.”
아침 예배를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그 학생은 지금은 어엿한 입사생이 되어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첫 발령지에서의 추억은 아직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수원교회 학생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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