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 처리법

발행일 발행호수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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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의 발언이 대한민국 국민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그는 최근 “6·25는 북한이 시도한 통일전쟁, 이를 막은 맥아더는 미국의 집달리이며 전쟁광이다” “1946년 국민들이 다수결 원칙에 따라 공산주의 체제를 택했어야 했다” “한미동맹은 반민족적, 예속적, 반평화적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 는 등의 주장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이 마치 고려시대의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것과 같은 통일전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왕건이 부패하고 무능한 신라와 후백제를 통일하여 백성의 고통을 덜어 준 것이었다면, 한국전쟁은 공산주의자들이 자유민주체제를 침략한 ‘체제의 전쟁’이었다. 그것도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 등 외세의 힘을 빌어 동족의 피를 흘린 것이었다. 고려시대의 백성들은 어느 왕의 지배를 받아도 그들의 삶은 다를 바가 없었겠으나,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사코 싸웠던 것은 공산주의 체제 밑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자유민주체제를 악의 뿌리로 규정하고 공산주의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찬양한다. 그러나 과연 그가 공산주의를 알기나 하는가, 공산주의를 얼마나 체험해 보았는가 우리는 묻고 싶다. 이미 실패한 도그마로 세계사의 무대에서 퇴출된지 오래이며 지구상에 오직 북한에만 존재하는 왕조(王朝)적 공산주의가 병영국가를 건설하여 수백만 인민을 기아 상태에 빠뜨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도 그의 편집광(偏執狂)적인 사설(辭說)을 고집하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만일 그가 의도적으로 북의 실상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다면, 자기의 주장을 ‘학문적 연구’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그것은 사이비 학문임에 틀림없다. 
 
그의 주장들도 물론 그가 창안한 이론이 아니며 그가 미국에 유학하면서 배운 소위 수정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6·25를 침략전쟁이 아닌 ‘민족의 통일전쟁’으로 보고, 미국이야말로 이에 대한 주된 책임자라고 주장하여 철부지 주사파(主思派)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을 그대로 되뇌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한때 미국에서 풍미했던 수정주의 시각은 냉전이 끝나고 묻혀진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자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고 마침내 커밍스 자신도 오류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즉 강정구 교수는 이미 용도 폐기된 낡은 레코드 판을 계속 돌리고 있는 꼴이 된다.
 
강정구 교수를 어찌할까? 그를 사법 처리하여 ‘허황된 민족주의의 순교자’를 만드는 것보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거리의 선동자’나 무엇이 짖는 소리 정도로 내팽개쳐 두는 것이 나을 법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교수와 학자라는 그의 허울이다. 그의 낡은 도그마를 믿고 분별력 없는 젊은이들이 강정구 신드롬에 빠져 헤맬까 걱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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