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

<신앙체험기 512회> 인천교회 배순자 권사 2편
발행일 발행호수 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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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그 후로 저는 하나님께서 “일 열심히 해”라고 하셨던 말씀을 잊지 않고 반사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 진주전도관에는 주일학생이 무척 많아서 100명이 훌쩍 넘었는데, 그중에는 태주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태주는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려워서 어머니의 풀빵 장사로 겨우 입에 풀칠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태주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하던 차에 태주 어머니가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니가 울먹거리며 말씀하시기를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태주를 고아원에 보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주가 병에 걸려 죽어가니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저는 주일학생 두 명과 함께 생명물을 가지고 고아원을 찾아갔습니다. 고아원 측에서 태주는 살 가망이 없고 곧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본 태주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창백한 얼굴의 태주는 뼈만 남은 작은 몸으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듯했습니다. “태주야. 우리가 왔어” 이름을 불러봤지만 태주는 대답할 힘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태주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주고 같이 온 주일학생들과 함께 간절히 찬송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친 뒤 저는 태주의 머리맡에 생명물을 두고 “태주야. 남은 생명물을 두고 갈 테니 일어나서 꼭 다 마셔야 해”라고 간곡히 부탁한 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어느 수요일이었습니다. 예배를 앞두고 평소처럼 아이들을 챙기느라 분주히 움직이는데 누군가 예배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바로 태주였습니다. 곧 죽을 거라 했던 태주가 살아서 고아원 친구들까지 데리고 교회에 온 것이었습니다. 순간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태주에게 달려가 반갑게 맞이하고 아이들을 예배실로 안내했습니다. 곧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어느 때보다도 진한 백합꽃 향기가 예배실 가득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온종일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1964년 3월 21일, 저는 소사신앙촌에 들어가 제과부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소사에서는 ‘늘 부지런해야 한다’는 하나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자 했습니다. 빵 포장하는 담당이었던 저는 어떻게 하면 더 부지런해질 수 있을까 늘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과부는 2교대로 일을 했고, 저의 근무시간은 저녁이었기에 잠을 조금 줄이고 낮에는 밖에 나가 신앙촌제품을 판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과부 근무가 끝나면 신앙촌 간장과 카스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는데, 신앙촌 간장과 카스텔라는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어 고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품이 금세 팔려나가고 신앙촌으로 돌아올 때면 보람 가득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러 덕소신앙촌에 방문했는데 그 후로 덕소신앙촌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마다 덕소에서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 덕소신앙촌 건설대 추가 모집 소식이 들려와서 저는 망설임 없이 건설대에 지원하여 꿈에 그리던 덕소신앙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1967년 덕소신앙촌에서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모습

덕소신앙촌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하나님을 자주 뵐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건설대 일은 처음이라 삽을 익숙하게 다루지 못해 다리에 상처를 입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현장에 계신 하나님께 뛰어가 다친 다리에 축복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쉭쉭’ 축복해 주시면 흐르던 피가 바로 멎고 상처도 금세 나았습니다. 또 일을 하다가 말할 수 없이 진한 향취가 맡아지면, 어김없이 하나님 차가 주변을 지나가고 있어서 매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건설대 초반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평소와 같이 자갈을 캐서 나르는 중이었는데 자갈 싣는 트럭의 위치를 약간만 바꾸면 더 효율적일 것 같았습니다. 저는 운전 기사님께 트럭을 조금만 옆으로 옮겨달라고 부탁드렸는데, 트럭이 움직이자 그것이 거슬렸는지 책임자였던 토목 장로님이 큰소리로 “야! 그 차가 니 차도 아닌데 왜 마음대로 옮겨?”하고 삿대질까지 하며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장로님께 사과드렸지만 무안하고 당혹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저는 새벽예배 때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울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주 일요일 예배시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한 명이라도 떨어뜨리면 안 돼요. 책임자들 일할 때 특히 주의하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꼭 저를 두고 하시는 말인 것만 같았는데, 예배가 끝난 뒤 제게 화를 냈던 토목 장로님이 저를 불러서 “순자야 그땐 내가 미안했어”라고 사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님의 사과를 받으니 서러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고,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모두 듣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건설대에서 일하다가 결혼을 한 후 양재부를 거쳐 본격적으로 소비조합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품을 판매하고 싶어도 아는 사람도 없고, 서울 지리도 익숙하지 않아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용기내어 그 일대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집주인은 신앙촌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무척 반가워하더니 마침 카펫이 필요했다면서 고급 카펫을 두 장이나 구입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자신감을 갖고 곳곳을 다니며 신나게 신앙촌 제품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983년도에 가족이 함께 인천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덕소신앙촌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여겼습니다. 인천에서는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하려고 가사도우미, 식당 종업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교회와도 멀어진 채 24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라 사회에 자리 잡았고 저도 스스로를 돌아 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옷 한 벌도 제대로 사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 좋은 옷을 한 벌 마련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문득 동네에 있는 신앙촌상회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교회에 가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상회 앞을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상회에 들어가 겨울 코트와 재킷을 골라서 사 왔습니다. 그런데 옷을 산 이후로 신앙촌이 너무나 그리운 것이었습니다. 결국 용기를 내어 양재부 시절 친하게 지내던 박청자 권사(소사교회)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박 권사는 반가워하며 요즘 교회에서 천부교 50년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데, 하나님 모습도 나오고 같이 일하던 양재부 건물도 나온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에 기쁨이 차오르면서 다시 교회에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주 일요일, 떨리는 마음으로 소사교회에 갔는데 예배가 시작되기 전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습니다. 화면 속에 하나님 모습을 보는 순간 너무나 그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끝날 때까지 계속 눈물을 흘린 저는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때부터 매주 소사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새벽예배에도 나가고 싶어서 집과 가까운 인천교회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2007년에 교회에 다시 나오면서 추수감사절 예배에도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날 신앙촌에 도착해 친한 권사님과 함께 새마을금고 앞을 지나 숙소로 가는데, 어디선가 말도 못하게 진한 백합꽃 향기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향은 예전에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때마다 맡았던 향취와 똑같았습니다. 옆에 있던 권사님도 “어디서 백합꽃 향기 나지 않아요?”라며 놀라워했습니다. 향취는 새마을금고 앞에서부터 생명물 받는 곳까지 이어졌고, 저희는 그 길을 걸으며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계속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2015년쯤에도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릴 때 향취를 맡았습니다. 하나님 찬송이 시작될 때부터 맡아지던 향취가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드릴 때까지 지속되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배순자 권사/인천교회

저는 요즘 천부교 경전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제가 지금껏 따라온 분이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은혜로 함께 해 주실 때 은은히 퍼지던 백합꽃 향기의 기억은 여전히 제 신앙생활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귀한 은혜를 생각할수록 오랜 세월 하나님을 떠나 있었던 지난날이 깊이 뉘우쳐집니다. 이제는 앞으로의 시간을 하나님께 모두 드리고 성결하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구원의 길을 밝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모든 시험을 이겨내고 끝까지 이 길을 따라갈 것을 굳게 다짐해 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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