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상회 간판 보고 전도됐어요’ (덕소교회 정희자씨)
신앙촌상회주인 서영자 권사 신앙촌상회 보고 전도된 정희자씨“어머! 내가 그렇게 찾던 신앙촌이 여기 있네”
2007년 가을의 문턱에 정희자씨는 서영자 사장의 신앙촌상회로 헤어진 동기간을 찾은 듯 반가워하며 들어왔다.
신용산시장 근처서 살던 정희자씨는 비교적 몸집이 컸던 아이들 옷을 신앙촌 것으로 사입혔다.
“그때 시중 옷 품질이 안 좋았어요. 바지 하나가 400원이며 신앙촌 것은 3500원이었어요. 그래도 신앙촌 것으로 입혔어요. 시중 것 대여섯 개 입히는 것보다 훨씬 나았거든요. 그때 쫄쫄이 바지가 나왔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스판 바지에요. 그걸 입혀 놓으면 예쁘기도 하고 옷 입은 태도 나서 그것만 줄곧 입혔어요.”
동생을 시집보낼 때 신앙촌 담요와 엑슬란 내복과 속치마로 혼수를 해보낸 이야기를 하며 얼굴엔 웃음이 피어난다.
식료품점을 크게 했었는데 가게를 접고 가정에 들어와 살림만 하면서 신앙촌 아줌마와 연락이 끊어졌다. 여러 방면으로 신앙촌을 찾았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흘렀고, 하루는 면목동에 사는 친구네 왔다가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고 가기로 했다. 미장원 옆 집이 바로 서영자 사장의 신앙촌상회였다. 그날 이후 정희자씨는 그렇게 찾고 싶던 신앙촌을 찾았고, 서영자 사장의 권유로 신앙촌 체육대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교회까지 오게 되었다.
젊어서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가정의 대소사를 고하고 살았던 정씨,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며 지내왔다. 아이들에게도 내가 남에게 1000원을 피해 입히면 나는 2000원의 손해를 보게 되어있다고 교육하며 적은 부분에서라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양심적으로 살 것을 늘 교육했다. 그런데 천부교회에 왔더니 양심의 법, 자유율법을 말씀하신다. 그것이 귀에 쏙 들어왔다. ‘아, 여기는 내가 믿을만한 곳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서 권사를 따라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믿을려면 철저히 믿어야 한다. 흐지부지 믿어선 안 되다”는 말씀에 새벽예배도 나와야겠는데 이렇게 손님처럼 믿어선 안될 것같아 마음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