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통일을 위하여

김근식 /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488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김근식 /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광복 70주년에 한반도는 최고조의 긴장을 맞고 있다.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마저 실종되었다. 서해는 전쟁의 바다로 변한지 오래고 휴전선은 남북의 치킨게임으로 포탄이 오고간다. 더 무서운 건 긴장과 대결의 한반도에 남북의 구성원들마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혐오와 염증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남갈등은 자폐적 진영논리에 빠져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은 적으로 규정된다. 광복 70주년에 평화와 통일은 요원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통일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준비가 잘되어서가 아니라 북한 요인으로 인해 통일이라는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시장은 이미 국가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널리 확산되어 있다. 계획경제는 시장경제와 공존하거나 시장경제로부터 지대(rent)를 얻지 않고서는 스스로 생존하기 힘들다. 고난의 행군 이후 스스로 자력갱생에 익숙한 ‘장마당 세대’의 의식은 이미 국가와 당에 의존하지 않는다. 북한의 실질적 변화가 위아래로 지속되면서 북한 내부의 정치적 변동과 근본적 변화의 씨앗은 이미 뿌려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발 통일의 기회가 점점 다가오는 현실에서 정작 우리의 통일 준비는 허망하거나 공허할 뿐이다.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되고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지금의 한반도 현실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관용하지 못하고 상대를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용납못할 적으로 인식하는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의 현실에서 통일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것이다. 통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북한요인으로 통일이 갑자기 닥친다 하더라도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의 축적이 없는 통일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통일은 반드시 평화로운 통일이어야 한다. 독일 통일이 아름다운 것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해서가 아니었다. 통일과정에서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통일에 합의했던 예멘은 3년 뒤 유혈사태를 동반한 내전을 겪고서야 통일되었다. 통일 이후 예멘은 장기독재하에 신음했고 지금은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온상이 되고 있다. 평화롭지 못한 예맨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비극이었다.

1945년 해방은 우리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해방이었고 그 까닭에 해방은 ‘갈라진’ 해방으로 다가왔고 결국은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평화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통일 역시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다. 평화로운 통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상대의 마음을 사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화해협력과 상호이해를 통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지 못한 채로 통일이라는 기회의 창이 열린다면 상호 불신과 증오와 갈등이 난무하는 매우 폭력적인 비평화적 통일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부터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남남갈등은 남북갈등으로 확대되어 예상밖의 폭력적 통일이 진행될지 모른다. 막연한 통일이 아닌 평화로운 통일을 받아 안기 위해 이제라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평화 그리고 우리 내부의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