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물로 나병이 낫게 되자 평택 제단에 교인 점점 늘어나
안진옥(4) / 기장신앙촌그 후 1957년에는 평택에도 전도관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이 부임해 오시고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흙벽돌로 제단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기성교회에서 전도관을 짓는 것을 방해하며 쌓아 놓은 흙벽돌을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꿋꿋이 제단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전도사님을 따라 심방을 다니며 전도를 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사람들
평택에 벽돌로 제단을 짓기 시작하자
기성교회에서 방해하며 벽돌 무너뜨려
그래도 꿋꿋이 제단 짓고 전도 시작해
한번은 전도사님이 나병 환자의 집에 심방을 가자고 하셔서 교인들과 함께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집은 평택읍 서정리시장 근처에 있었습니다. 서정리시장 옆에 개천이 흐르고 개천가에 집들이 여러 채 있었는데 나병 환자의 집은 다른 집들보다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초가집이었습니다. 나지막한 집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니 볕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방에 50대 정도 되는 남자 분이 누워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불그스름한 상처가 뒤덮여 있었고 상처에서 고름이 자꾸 흘렀습니다. 그분은 나병에 걸린 뒤로 바깥에 다니지 못하고 자녀들도 자신을 무서워하며 가까이 오지 않는다면서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전도사님이 그분에게 생명물을 주시며 박태선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물이라고 설명했더니 그분은 얼굴에 생명물을 발랐습니다. 그리고 교인들과 함께 간절히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병 환자에 생명물 바르자 며칠 만에 상처 아물고 흘러내리던 고름도 그쳐
한달 후 험하던 나병 환자의 얼굴이 보통 사람처럼 완전히 깨끗해져
생명물의 권능으로 나병까지 깨끗이 낫는 것을 그때 확실히 보게 돼
예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환자의 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이 문둥병에 걸린 후로 동네 사람들이 무조건 피하고 조롱까지 한다면서 이렇게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꼭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전도사님과 교인들은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다시 그 집에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평택제단에서 그분의 집까지 가려면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가야 했고, 주변에 다른 교인들이 없어서 자주 심방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도사님이 일주일에 두 번은 꼭 가자고 했습니다.
그 집에 가서 환자의 얼굴을 보니 불그스름한 상처가 많이 아물어 고름이 꾸덕꾸덕하게 말라 있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나병은 고치기 어려운 데다 가난한 형편에 치료를 받을 수도 없어서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살았는데, 생명물을 바르고 며칠 만에 이렇게 좋아졌다며 무척 기뻐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그 집에 심방 갈 때마다 그분의 얼굴이 눈에 띠게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그분은 피부가 완전히 깨끗해져서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전도사님과 교인들은 그분에게 “이제 다 나으셨네요.” 하며 인사를 건넸고 그분은 이렇게 고마운 일이 어디 있냐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의 부인과 자녀들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나병 환자를 가까이에서 본 것은 그분이 처음이었는데, 그토록 험하던 얼굴이 생명물을 바르며 깨끗이 낫는 것을 확실히 보게 되었습니다. 생명물을 바르고 나병이 나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평택제단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제단에서 반사를 맡아 주일학생들 돌봐
예배시간에 아이들과 “감람나무 가지에
내리는 이슬 고요히 맘 문 열고 받아
보세요” 찬송 부를 때 진한 향취 맡아져
저는 제단에서 반사를 맡아 주일학생을 돌보면서 설교 말씀과 성경 구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를 설명할 때는 뽀얗게 이슬 은혜가 내리는 것을 제가 직접 보고 체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성경 호세아 14장에 이슬 은혜를 내리는 분은 감람나무라고 기록돼 있는데, 박태선 장로님께서 그 은혜를 내리신다고 설명하면 아이들은 두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감람나무 가지에 내리는 이슬 고요히 맘 문 열고 받아 보세요~” 하는 찬송을 부를 때 진한 향취가 맡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1958년 12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도관과 신앙촌을 세워 주시고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왜 옥에 가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전국에 전도관이 세워지고 엄청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몰려오자 위기감을 느낀 종교계와 일부 정치인들이 결탁하여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시게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전도관 비방 기사 계속 나오고 빈정대며
조롱하는 사람들 만나도 교인들과 함께
씩씩하게 전도하러 다니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길을 꼭 가겠노라 다짐해
그때 신문에 우리를 비방하는 기사가 계속 나오니 심방을 하러 가면 빈정대며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교인들과 함께 멈추지 않고 전도를 하러 다녔습니다. 한번은 어떤 집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전도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얼굴이 환한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날 심방을 마치고 제단에 모여서 간절하게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감람나무 별을 보라. 반짝반짝 빛나면서 죄악 세상 비치누나.” 하는 찬송을 부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안진옥님 신앙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