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로 은혜받고 뼛속에서 우러나는 눈물 한없이 흘려
김경숙 퇴임관장(1) / 기장신앙촌저는 1932년 전남 강진군 병영면 상락리에서 출생했습니다. 광주고녀(현재의 광주여고)에 다니던 여학생 시절, 이웃집 아주머니의 권유로 장로교회에 처음 나갔으며 그 후로 가족들도 함께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언론과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어느 날 신문에서 육군 정훈장교(政訓將校)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정훈장교는 군의 대외 보도 업무를 담당하는 등 언론과 관련이 있으며, 6 · 25 전쟁 후 군인이 유망한 직업으로 손꼽히는 추세 속에서 저는 정훈장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소위로 임관된 저는 서울 용산의 육군 본부에서 대외 보도 업무를 맡았습니다.
박 장로님을 뵌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해
머리 위에는 눈부신 빛이 드리워졌고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가 너무도 아름다워
제가 몸담았던 정훈감실은 당시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여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했습니다. 구성원 중에 장로교회 장로인 정훈과장님을 비롯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1955년 어느 날 남산 집회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남산에서 집회를 하셨는데, 보통 집회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렸으며, 향기가 진동하고 불이 떨어지는 등 놀라운 은혜를 많은 사람들이 체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녔던 흑석동 장로교회에서도 교인들이 박태선 장로님에 대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는 박 장로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길거리를 지나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박태선 장로님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 사진이 실린 그 포스터는 곧 있을 집회를 알리며 거리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즈음 흑석동 교회 예배 시간에 이운집 목사가 광고하기를 “박태선 장로님은 은혜를 부어 주시는 분이니, 이번에 여의도에서 집회하실 때 모두들 참석해 은혜 받으십시오.”라고 권유하여 저도 그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여의도 백사장에 마련된 집회장에 들어섰을 때, 마침 박 장로님께서 단상으로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등단하신 박 장로님을 뵌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리 위에는 눈부신 빛이 드리워졌으며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습니다. 쓰고 계신 찬란한 황금 관과 빛나는 금의(錦衣)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제일 앞자리로 들어간 저는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며 놀라움으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광채가 사라지자 박 장로님의 말끔한 정장 차림이 보였는데, 그 순간 어디서 나는지 과일 향기처럼 상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콧속으로 쑥 들어오더니 배 속까지 내려가며 아주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 이것이 은혜구나. 사람들이 말하던 향기가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집회가 열린 열흘 동안 저는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집회장에 남아 철야를 했습니다. 용건이 있을 때만 집에 잠시 다녀올 뿐이었고 집회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기쁘기만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에 서시지 않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거나 받은 은혜에 대해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아 놓은 드넓은 집회장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비좁게 앉아 있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고 며칠 식사를 걸렀지만 배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일생 동안 한 번도 맛보지 못할 기쁨이 그곳에 차고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을 처음 뵈었을 때의 놀라운 광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크나큰 경외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집회 중 어느 날, 박 장로님께서 “일어나라! 병자들은 일어나라!”고 외치실 때 저는 제 앞에 있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여자 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다리를 가리키면서 “저는 어려서 앉은뱅이가 되었는데 이 집회에 와서 다리가 펴졌어요!” 하며 기쁨에 겨워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벙어리인 젊은 남자 분이 말문이 열려서 단상에 올라가 “하-나-님 감-사-함-다.” 하고 더듬더듬 말하는 것도 볼 수 있었으며, 가지각색 병자들이 일어나 뛰는 모습은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고통에서 놓여난 사람들은 기쁨과 감격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토록 놀라운 은혜 속에서 집회 기간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그해 6월에는 육군 본부의 군종감실(軍宗監室)과 군인 교회 주최로 박 장로님을 모시고 “국군 장병 심령 부흥대회”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정훈감실에서는 집회 포스터를 제작하고 거리 곳곳에 내다 붙이는 등 후원을 해 주었습니다. 육군 본부 내 광장에서 열린 그 집회에 군복을 입은 장병들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하루는 정장 차림의 어느 신사 분이 단상에 나와서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성신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외치던 기억이 납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안수해 주셨는데, 어느 날 저녁 집회 때 안수를 받을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의 손이 탁 하고 제 머리에 닿는 순간 몸속이 어떻게나 뜨거워지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펄펄 뛰고 싶을 정도였으며, 불이 제 속으로 들어와 전부 태워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비가 내려서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지만, 안수를 받은 때부터 젖은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제 자신이 불덩어리가 된 듯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감당할 수 없이 쏟아지는데 그냥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이었습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도 이 귀한 은혜를 주십니까!’ 그 한마디를 진심으로 외치며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눈물과 기도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군복 차림으로 집회장에서 계속 우는 것을 보셨던 정봉학 승사님(현재 기장신앙촌 소속)은, 여자 군인이 너무 많이 울어서 쳐다보았다며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하십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