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하면서 변치않는 생명물의 권능을 깨달아

조연주 님(1) / 기장신앙촌2
발행일 발행호수 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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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지난호에 이어서
한번은 한 살 된 조카 경희가 설사병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약을 먹여도 낫지 않고 계속 설사를 하던 아이는 이틀이 되자 기운이 다 빠져 뼈가 없는 아이처럼 축 늘어져 버렸습니다. 울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숨만 간신히 쉬는 것을 보고 온 식구가 다 겁을 내며 안절부절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제단에 뛰어가 생명물과 축복 캐러멜을 받아 왔습니다. 생명물에 축복 캐러멜을 넣고 끓여서 아이에게 조금씩 먹였더니, 아이는 잘 받아먹다가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한잠을 자고 일어나 방긋방긋 웃으며 장난을 치는 아이는 그 후로 설사병이 말끔히 낫게 되었습니다.

제가 임종을 지켰던 신앙촌 언니의 묘를 30년 만에 옮기는데
30년 전에 생명물을 담아서 함께 넣었던 유리병 4개가 나와
관은 다 썩었지만 생명물은 맑고 투명한 상태 그대로 발견돼

영광제단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집에서 나왔더니 밤새 비가 내린 뒤라 구름이 많이 끼어 무척 캄캄했습니다. 당시 저희 동네 같은 시골 마을에는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에 달빛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날은 달빛마저 구름에 가렸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기를 기도드리면서 더듬더듬 제단을 향해 가는데, 갑자기 제 앞이 점점 밝아졌습니다. ‘이 빛이 어디서 오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제단을 향해 가는 길 외에는 전부 캄캄할 뿐 빛을 비출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빛에 의지해 빠른 걸음으로 영광제단에 도착한 순간 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듬해인 1965년에는 영광읍 백학리에 제단 건물을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언덕 위의 아담한 시골제단에는 어린이들이 많이 전도되었고, 저는 반사 선생님 중에서 가장 고참이었습니다. 새로운 찬송가도 배우고 좋은 일이 있으면 다 같이 축하해 주며 아이들과 참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친구들 손을 잡고 즐겁게 제단에 오던 아이들, 샛별 같은 두 눈을 빛내며 찬송을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선연히 기억납니다.

저는 1년 반 동안 영광제단에 다니며 은혜를 깨닫게 되었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기도와 깊은 감사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너무나 귀한 체험이었습니다.

1966년 4월 10일 소사신앙촌 편물부에 입사한 저는 얼마 후 덕소신앙촌으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 도착하여 그다음 날 눈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손이 제 눈에 닿는 순간 눈알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고 가지각색 별들이 눈 속에서 아른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안찰을 마친 후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신 음성으로 양재부에서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돌아올 때 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고 즐거워서 가벼운 걸음으로 양재부를 향해 갔습니다.

의류를 생산하는 양재부에서 저는 재봉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일을 하는 중에 무언가 타는 듯한 지독한 냄새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맡아 보는 그 냄새는 머리카락 타는 냄새보다 더 독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냄새가 어디서 나지?’ 궁금해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공장 어디에도 그런 냄새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얘기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런 냄새가 전혀 안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냄새가 나한테만 맡아지나?’ 싶어서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하나님께서 죄를 소멸해 주실 때 ‘죄 타는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전에 맡았던 냄새가 죄 타는 냄새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일을 하는 중에 은혜를 주셔서 죄를 소멸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1970년 기장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도 기장신앙촌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양재부에서 근무하던 1978년경, 고향에서 영광제단에 다니시던 어머니(오막동 집사)가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애써 가다듬으며 다음 날 생명물을 가지고 전라남도 영광군의 고향 집으로 향했습니다. 밤늦게 도착해 보니 제단에 다니지 않는 형제들이 이미 입관을 다 마치고 관 뚜껑만 덮지 않고 있었습니다.
수의를 입고 누워 계신 어머니의 얼굴은 오랜 병환 탓인지 비쩍 말라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기도를 드린 후 생명물을 숟가락에 떠서 어머니 입에 넣어 드렸습니다. 생명물은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고 계속 들어가 한참 동안 넣어 드린 다음, 입고 계신 수의 위로 온몸에 생명물을 뿌려 드렸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계신 방에서 밤새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다음 날 관 뚜껑을 덮기 전에 가족들이 모여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뵈었을 때 다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쩍 말라 병색이 짙었던 어머니 얼굴에 보기 좋게 살이 오르고 뽀얗게 피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올케 언니도 “얼굴에 살이 올랐어요!” 하며 놀라워했습니다. 생전에 건강하셨을 때보다 더욱 곱고 예쁜 모습으로 잠을 주무시는 듯 편안해 보였습니다. 어머니를 보내며 안타깝고 슬펐던 저는 그 모습에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장례를 모두 마칠 때까지 ‘어머니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후 2004년 3월에는 저와 같이 양재부에서 일했던 이경주 언니의 묘를 이장한 일이 있었습니다. 언니는 1974년에 숨을 거뒀는데 당시 언니를 간호하며 임종을 지켰던 제가 묘를 이장할 때 보호자의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장 작업을 하던 중 무덤 속에서 생명물을 담은 유리병 4개가 나왔습니다. 그 생명물은 입관할 당시 관의 네 귀퉁이에 넣어 준 것이었습니다. 30년의 세월 동안 관은 다 썩어 버렸지만 생명물은 너무나 투명하고 맑은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은 썩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그 생명물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 앞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이 지면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저의 체험을 간추려 보았습니다. 그 귀한 은혜를 제대로 간직하지 못한 제 모습이 한없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은혜에 늘 감사드리며 하루하루 죄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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