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9월 28일 – ‘신앙촌 보고 한국을 다시 인식’

덕소신앙촌 방문한 모스 박사 `이 나라의 살 길을 본 듯하다`
발행일 발행호수 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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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64년 9월 28일자에 덕소신앙촌을 둘러본 켄사스 대학 모스 박사의 기사가 실렸다.

1964년 9월 28일자 신앙신보 1면에는 “한국을 다시 인식”이란 제목 아래 켄사드 대학 모스 박사(Dr. Felix Moos)의 기사가 실렸다.

모스 박사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신앙촌 얘기를 듣다가 주한미8군 초청으로 내한한 기회에 신앙촌을 찾은 길이라 했다. 신앙촌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까지 했으나 직접 신앙촌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기에 눈앞에 나타나는 경이를 한참 동안은 넋 잃은 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원조를 받은 것도 아닌데…’ 자력만으로 이와 같은 건설을 한다는 것이 박사의 상식으로는 아무래도 못미더운 눈치였다.

한국에 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동산은 처음 본다면서 집집마다 가꿔진 장미며 수국, 모란 등을 부러워하였다. “이렇게 해놓으니 시기를 안 받을 수 있나 나도 은근히 시기가 나는걸” 박사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시기는 왜들 하는 걸까요?”묻는 말에 그는 “당신네들은 이만큼 이루어 놓았고 그들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죠”하고 간명히 답변한다. 모스 교수에 의하면 무릇 선구자들이 인류의 복지를 위한 위대한 새운동을 일으킬 때 배척과 수모를 당하는 것은 기성세력의 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의 진가가 비로소 알려진다는 것이다.

신조된 철강선 앞에서 발길을 멈춘 모스 박사는 “굳 아이디어”를 연발했다. 건축, 시설, 공업, 조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술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외국에 가서 트레이닝을 받아왔느냐고 물으면서 그 능력을 동경하는 것이었다. 경공장지대를 거쳐 시온철강공장에 이른 박사는 시뻘겋게 쏟아지는 쇳물을 강철 같은 팔뚝을 걷어붙이고 다루고 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이 나라의 살길은 바로 이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놀랍소. 나는 오늘 이곳에 와 보고 천국 가는 길이 여러분 앞에 환하다는 깊은 인상을 받았오. 이곳의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마다 힘껏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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