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제노사이드,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 연이은 암매장 발각, 되풀이되는 문화 말살의 역사 -
발행일 발행호수 2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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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dailyhive.com/vancouver/residential-school-memorial-vancouver)

왼쪽의 사진은 지난 5월 28일 캐나다 밴쿠버 아트 갤러리 앞 계단의 모습이다. 여러 켤레의 아동용 신발과 꽃, 인형 등이 빼곡히 놓여 있다. 신발의 개수는 215개.

5월 28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캠루프스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어린이 유해 215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이 죽은 아이들을 애도하며 추모의 의미로 신발을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4일 서스캐처원주 매리벌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도 751구의 어린이 유해가 발견됐다. 연이은 암매장 발견 소식에 캐나다 사회는 또다시 큰 충격에 빠졌다. 원주민 기숙학교가 무엇이고,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첫 번째 사진은 1891년 서스캐처원주 레지나 원주민 기숙학교에 입학한 크리족 원주민 토마스 무어 키시크의 입학 전 후 사진(출처: 리서치게이트), 두 번째 사진은 1914년 또는 1919년경 앨버타주 레드 디어 원주민 기숙학교의 글자 수업 모습. 칠판 위에는 “예수를 바라보라(LOOKING UNTO JESUS)”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출처: CBC 뉴스), 세번째 사진은 1945년 온타리오주 포트 올버니에 있는 세인트 앤 원주민 기숙학교. 수녀의 감독 아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출처: CBC 뉴스)

■ 원주민 기숙학교는 어떤 곳?

1867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토착신앙과 토착어 사용도 금지하며 문화 말살 정책을 펼쳤다. 문화 말살의 목적은 “원주민을 죽이고, 인간을 살리는 것(kill the Indian, save the man)”이었는데, 원주민 기숙학교는 이 문화 말살 정책의 핵심 요소였다.

원주민 기숙학교는 원주민들의 캐나다 사회 동화 교육 명목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수용한 기독교 교육 시설이다. 1883년부터 1996년까지 전국에 139개소가 존재했으며 대부분의 학교는 가톨릭 교구에서 운영했다. 약 15만 명의 어린이가 가족으로부터 격리돼 강제 수용되었으며, 원주민 언어 사용을 금지 당하고, 주입식 가톨릭 교육을 받았다.

문화란 한 집단의 고유한 물질적‧정신적 양식으로,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포함한다. 토착어, 토착신앙 등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체득한 고유의 정신과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엄격한 훈육과정에는 체벌이 뒤따랐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과연 가혹한 훈육과 체벌때문이었을까?

■ 기숙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1934년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캠루프스 원주민 기숙학교의 학생과 교직원들. 캠루프스 원주민 기숙학교는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캐나다 최대 규모의 원주민 기숙학교로, 최근 이 학교 부지에서 215구의 어린이 유해가 발견되었다. (출처: https://slcc.ca/exhibits/where-are-the-children/)

지금부터 6년 전인 2015년 6월 2일,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의 실상을 밝히는 충격적인 내용의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보고서를 발표한 이들은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이하 TRC)’로, 원주민 기숙학교의 진상을 조사하고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조직이다. 기숙학교 피해자들은 지난 2007년 연방정부를 상대로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단 소송을 냈는데, 법원의 화해조정 조건 중 하나로 이듬해인 2008년 TRC가 출범했다.

TRC는 6년여에 걸쳐 생존자와 목격자 6750명의 1355시간에 이르는 증언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요약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수용 기간 교육 과정에서 신체적, 성적, 정신적 학대가 이뤄졌으며, 영양실조와 질병, 자살, 학대 등으로 최소 4천100명이 사망했으며 최대 60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죽어 나갔다고 추산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아이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고, 원주민 언어 사용이 적발되면 묶여 있거나 비누를 먹도록 강요당했고, 기도문을 외우지 못한다고 피가 날 정도로 처벌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신부, 수녀들에게 성추행까지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숙학교 피해자 15만명 중 현재 8만 여 명의 생존자가 있는데, 성폭행을 포함한 성범죄 신고만 3만 1천 건에 달한다. 기숙학교 생존자 데니스 화이트버드씨는 “성폭행이 일상”이었다며 “신부와 수녀들은 기숙사에 나란히 붙어 있는 침상을 옮겨 다니며 성추행을 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잠든 척하면서 다음 대상자가 내가 되지 않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고 말했다.

1950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무스팩토리섬의 비숍 호든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잠들기 전 아이들이 성공회 선생님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출처: 로이터)

또 다른 생존자 프레드 고든씨는 215구의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놀랍지 않다며, 자신의 이모 에블린이 1936년 11살 때 르브레트의 수녀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은 신부, 수녀들에게 납치되어 기숙학교에 들어와 성적 학대를 당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관행’이었다고 한다. “낮에는 평범해 보여도 밤에는 이 짐승들이 나와서 항상 우리를 학대했다”고 고든씨는 말했다.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캠루프스 기숙학교는 1890년 로마 가톨릭 교회 산하로 설립되어 1969년까지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캐나다 최대 규모의 원주민 기숙학교였다. 캠루프스 학교의 사망자수는 1915년~1963년 사이 최소 51명으로 보고되었는데, 이번에 발견된 215명은 이보다 훨씬 큰 숫자였고, 죽은 아이들을 암매장까지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원주민 기숙학교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서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되었다.

2015년 12월 15일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최종보고서(https://nctr.ca/records/reports/)를 공개하는 모습. 이들은 보고서에서 원주민 기숙학교 정책은 ‘문화적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했다.
단상에 그려진 그림은 원주민들의 고통을 나타내는데,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은 자녀를 강제로 학교에 데려갔을 때 부모가 느끼는 무력감을 상징하고, 오른쪽 잘려진 손가락은 학교에서 겪은 학대와 사라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표현, 위쪽의 십자가는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켰음을 의미한다. (출처: CBC 뉴스)

■ 되풀이되는 문화 말살의 역사

원주민 기숙학교 사건은 단순한 아동 학대 사건이 아니었다. TRC 보고서는 “기숙학교는 원주민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밝히며 이를 “문화적 제노사이드(Cultural Genocide)”라고 규정했다.
제노사이드란 “어느 특정한 종족이나 종교적 집단을 완전히 없앨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박해 등을 행하는 집단 학살”로, 대표적으로는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있다.
보고서에는 이런 문화 말살의 역사가 15~16세기 로마 가톨릭 국가들이 아메리카대륙을 정복하고 원주민을 강제 개종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한다. 가톨릭 국가들은 그들이 발견한 땅을 식민지화 할 권리를 그들의 신에게 부여받았다고 믿었으며, 미개한 원주민들의 종교와 문화를 말살시키고 자신들의 우수한 종교와 문화를 주입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이러한 정신이 원주민 기숙학교 제도의 근간이 되었으며, 문화 말살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들어 기숙학교 암매장이 연달아 밝혀지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직접 캐나다에 와서 가톨릭의 잘못을 사과하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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