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힘을 주셨던 덕소신앙촌 건설
인중애 권사(3)/기장신앙촌소사에 이어 덕소신앙촌 건설에 참여
첫 번째 신앙촌인 소사신앙촌이 건설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아 더 큰 규모의 덕소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1957년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실 때 어디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음이 없이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홀로 모든 부분을 설계하시고 감찰하시면서 진두지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감히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건설대로 일하는 내내 직접 눈으로 보며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사신앙촌 건설 당시는 6⋅25 전쟁이 휴전을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살림살이가 어려웠고, 지금처럼 계절에 맞게 옷이며 신발이며 갖춰 신지 못하고 사계절을 검정 고무신만 신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제가 알고 지내던 천주교인은 성당을 지을 돈이 없어 외국에서 원조받은 것으로 지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어렵고 가난한 중에 신앙촌을 손수 건설하셨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덕소신앙촌 건설은 1962년 7월 20일. 역사적인 첫 삽을 뜨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 하나님의 진두지휘 아래 건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서울에서 약 20Km가량 떨어진 북한강 주변에 위치한 덕소신앙촌은 주위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는 달리 건설 부지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와 진흙으로 된 밭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난공사가 예상되는 이곳에 가장 먼저 도착한 팀은 소사신앙촌 주택 건설 대장인 장세호 집사님과 34명의 건설대였습니다.
일은 은혜 받을 수 있는 기회
하나님께 은혜받아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장 힘든 일은 내가 먼저, 누구보다 많이 일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당장이라도 덕소신앙촌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마침 장세호 집사님이 ‘덕소신앙촌으로 가서 일해보겠냐’며 친구를 통해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가겠노라’고 답신을 전하며 ‘나 같은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시는구나, 또 한 번 죄 씻을 기회를 주셨으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일주일 뒤에 드디어 저도 건설대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안찰을 통해 은혜 주신 하나님
그때 제 나이 26살, 무더운 여름이 찾아온 덕소신앙촌으로 친구 3명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하나님께서 저희들 4명 모두에게 안찰을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줄을 서서 기다리다 세 번째로 안찰을 받으러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지손가락 두 개를 제 눈 위에 살짝 대시자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저의 두 눈에서 손을 떼시고는 “내일 한 번 더 안찰 받으러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찰을 받고 나가는데도 토악질이 날 정도로 아파서 기어가다시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찰을 통해 성신을 부어 주시면 내 속에 있는 죄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에 안찰받을 때 아픔을 느끼는 것임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토록 아픈 것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소사 오만제단 건설 당시 오만제단 건설대 반장이었던 저를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이 큰 죄임을 가르쳐 주시며 따뜻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진 겸손한 사람이 되길 바라셨는데 저는 반장으로 남들을 이끄는 일을 하면서 겸손하지 못했고 저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닫고 나니 너무나 부끄러웠고 또다시 안찰을 받기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안찰을 통해 교만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해 주셨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 ‘오늘 언제 안찰을 받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때 마침 친구가 찾아와 하나님께서 안찰 받으러 오라 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안찰을 받으러 가니 하나님께서 전날과 마찬가지로 눈을 안찰해 주시는데 여전히 몸이 펄쩍펄쩍 뛸 정도로 너무나 아팠습니다.
안찰을 마치신 하나님께서는 “내일은 생명물을 강하게 축복해 줄 테니 마시고 눈을 닦아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새벽 커다란 통에 가득 담긴 물을 향해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신 후 건설 대원 한 명 한 명에게 손수 생명물을 떠서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 모습을 뵈니 ‘죄를씻어 주시려고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구나’ 하며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물을 받아 마시고 눈을 닦았더니 그렇게 아팠던 눈이 금세 아프지 않게 되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제하고 절제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 안에 하나가 될 때, 그 놀라운 힘
날이 갈수록 덕소신앙촌 건설 대원이 늘어나 350여 명이 되니 A, B반으로 나누어 일했습니다. 각 반의 사람들이 은혜 안에서 주어진 목표를 향해 열심히 일하니 한마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가 되어 일하는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 그때 생각이 떠오를 때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한번은 건설에 쓰일 모래를 한강 건너 모래사장에서 운반해 올 때였습니다. 맨 처음에는 모터 배가 아니라 노를 저어서 가는 배로 모래를 옮겼는데 후에 모터 배를 2대 구입해 더 빠르게 모래를 나를 수 있었습니다.
한강 건너편에 있는 모래를 배에 싣고 와서 많이 쌓아 놓는 팀이 이기는 시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양 팀 다 한마음으로 정신을 모으니 엄청난 기세로 일을 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선의의 경쟁 속에서 노력을 다한 후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 아파트를 지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유독 더운 날이었는데 8인치 블록이 가득 실린 8t 트럭이 들어와 그 많은 블록을 트럭에서 내리는 작업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들어서 우리에게 직접 주셨습니다. 8인치 블록은 굉장히 무거워서 웬만한 사람은 2장 들기도 힘든데,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니 절로 힘이 솟아나 신나게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레미콘 차량이 없던 때라 시멘트 한 포대를 개자면 물이 두 초롱씩 필요했습니다. 하루에 시멘트 1천 4백 포대를 썼는데 그에 필요한 물을 하나님께서 직접 부어 주셨습니다. 저희 물 운반팀이 물 초롱을 가져다 대면 통에 딱 맞게 부어 주셨는데 홀로 2천 8백 초롱의 물을 부어 주시면서 힘차게 진두지휘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시고 힘을 불어 넣어 주신 건설 현장은 밤늦게까지 이어져도 피곤함을 몰랐습니다. 덕소신앙촌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하룻밤에 주택이 20채가 넘게 지어지는 건설 광경을 목격하며 그저 놀라워했습니다.
가을쯤 되었을 무렵 덕소신앙촌과는 차로 2시간 거리였던 구로리(구로구 구로동의 이전 명칭)에 제단을 짓자고 하셨습니다. 뜻밖의 말씀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에도 매일 소사에서 덕소로 출퇴근 하셨고 새벽부터 밤까지 건설대와 일하셨는데 그 바쁘신 중에 덕소신앙촌과 멀고 아무것도 없던 곳에 제단을 지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쉽지 않은 건설이었지만 하나님의 진두지휘 아래 50명이 건설에 참여해 구로리제단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개관집회를 열었을 때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일일이 안수를 해 주셨는데 안수를 받고 나니 몸이 날아갈 것처럼 붕붕 뜨는 듯했으며 마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제강 공장
1962년 12월 말경 하나님께서는 덕소신앙촌에 제강 공장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는 제강 공장을 지을 만한 기술자는 물론 참고 서적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때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강 공장은 강철을 생산하는 곳으로 조남준 권사님을 책임자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제강 기계를 만드는 방법부터 하나하나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강 공장의 공정을 알려주시며 공정별로 사람들을 배치하셨는데 저는 고철에서 불순물을 분리하는 고철반의 반장으로 안진옥, 이순덕, 최기자, 안종윤, 안복란 등 10명과 함께 일했습니다.
제강 공장의 철근 만드는 공정에서 일했던 것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먼저 고철이 트럭이나 기차에 실려서 들어오면 하차반이 내려주고 고철반에서 그것을 받아 고철에서 불순물을 분리해 냈습니다.
분리한 고철을 용광로 용기에 넣으면 쇳물이 될 때까지 녹여서 단단한 철근으로 만들어집니다. 용광로 용기가 녹아내리지 않게 관리하는 반도 있었고 용광로에 불을 때는 작업반 등 여러 공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정 하나하나를 세심히 체크하시며 솔선수범하는 직원들에게 안찰을 통해 힘을 주셨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지낸 시간은 일을 통해 은혜를 받고 신앙이 한층 자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