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죄를 소멸해 주시는 능력이 있으시구나!
신종우 집사(1) / 기장신앙촌저는 1938년 충청북도 청원군 오송면 상봉리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래로 남동생 둘과 여동생이 있었지만 전부 어릴 때 병으로 죽게 되었고, 부모님은 저까지 잘못될까 봐 늘 노심초사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줄줄이 잃은 뒤로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자주 아프셨습니다.
그러던 1957년이었습니다. 앞집 사는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병을 고치러 가자고 했습니다. 광주리를 팔러 읍내를 돌아다녀서 바깥소식에 밝은 아주머니는 요즘 가는 데마다 박태선 장로님 이야기를 하더라며 그분 집회에서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습니다. 마침 내일 청주에서 집회하시니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차비 걱정을 하시기에 저는 얼른 이웃에 가서 돈을 꿔 오고 가실 때 드시라고 김밥을 싸 드렸습니다. 며칠 동안 집회에 참석하고 오신 어머니는 창백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생기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조치원 면화 공장에서 집회가 열린다며 서둘러 준비해 아버지와 같이 가셨습니다.
병이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고 오신
어머니는 늘 창백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생기 있어보여
부모님은 닷새 내내 집회장에 계셨고 저는 집에서 밥을 날라 드렸는데, 시골에서만 자란 저는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을 처음 봤습니다. 가마니가 깔린 바닥에 앉아 보니 습기가 올라와 질척거리는데도 사람들은 그 자리를 뺏길까 봐 집에 안 가고 철야를 했습니다. 항상 골골하시던 어머니는 밤을 새워 가며 예배드리는데도 피곤하지 않고 갈수록 기운이 난다 하셨습니다. 저는 집회장에 갔다가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치시면 뽀얀 안개 같고 구름 같은 것이 뭉게뭉게 퍼져 나와 사람들에게로 쫙 퍼졌습니다. 그리고 향기가 진동하는데 어찌나 좋은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대상을 치실 때 향기가 진동하니까 거기서 나는 냄새인가 하며 쉬는 시간 강대상 쪽에 가 봤지만 아무 냄새도 안 났습니다. 부모님께 이야기했더니 제가 은혜를 받은 거라며 하나님 주시는 향기는 그렇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또 신기한 것은 박 장로님께서 안수해 주시고 나서 병 나은 사람 일어나라 하셨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단상에 나가 앉은뱅이가 일어섰다, 장님이 눈을 떴다, 꼽추가 등이 펴졌다 하며 이야기하는데 병 나은 사람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 소문이 퍼지면서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대상을 치시면 뽀얀 안개같고 구름 같은 것이 뭉게뭉게 퍼져나와
사람들에게 쫙 퍼져 그리고 향기가 진동하는데 어찌나 좋은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어
안수 받고 병이 나은 사람들은 단상에 나가 이야기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집회가 열렸던 면화 공장을 예배실로 꾸며서 조치원전도관이 개관되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님 집회에 참석하시고 건강해지시자 아버지도 무척 좋아하셨고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게 됐습니다. 온 가족이 하루도 안 빠지고 10리를 걸어서 새벽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전도관에 제 또래 친구들이 많았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면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주일학교 반사를 맡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재미가 나서 함께 모이면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매일 전도관에 다니며 기쁘고 즐거우니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고 큰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면 ‘저 집 주인이 나만큼 좋을까?’ 싶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친구들과 은혜 받은
이야기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
매일 전도관에 다니며 기쁘고
즐거우니 세상 부러운 것 없어
하나님께서 전국 제단을 순회하실 때면 조치원제단에도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솜을 가져가면 축복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축복을 받아 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코 안이 잘 헐어서 진물이 나고 아팠는데 축복 솜으로 콧구멍을 막자 누런 물이 줄줄 흘러나와서 새 축복 솜으로 계속 바꿔 줬습니다. 한참 누런 물이 나온 후에 차차 아물기 시작했고 오래된 고질병이 그때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해 가을 증평으로 시집간 저는 증평전도관에 다니게 됐습니다. 삼 남매를 키우는 동안 축복 물질로 병이 나은 일이 많았는데 딸아이가 네 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큰 냄비에 칼국수를 끓여 부엌문 앞에 내려놨을 때 문 옆에 있던 아이가 넘어지면서 냄비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라 딸아이를 일으켜 바지를 벗겼더니 살이 딸려 벗겨져서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시골이라 약도 없고 병원이 너무 멀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급히 축복 솜에 생명물을 적셔서 두 다리에 붙여 줬더니 딸아이는 울지도 않고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이웃들은 어린애가 데었으면 심하게 보챌 텐데 잠만 자니 잘못된 거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오히려 저는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자는 동안 누런 고름이 흥건할 정도로 흘러나와 다시 축복 솜을 생명물에 적셔서 새것으로 갈아 줬습니다. 얼마 지나 고름이 꾸덕꾸덕 마르더니 며칠 후부터는 발갛게 새살이 올라오며 차차 아물었습니다. 펄펄 끓는 물에 화상을 입었지만 흉터도 없이 깨끗하게 낫는 것을 보고 하나님 축복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됐습니다.
딸이 펄펄 끊는 물에 화상을 입어
축복 솜에 생명물을 적셔 붙이니
누런 고름 나오더니 며칠 후부터
새살이 올라 흉터 없이 깨끗해져
조치원전도관에 다니셨던 부모님은 소사신앙촌이 건설될 때 입주를 하셨습니다. 가끔 부모님을 뵈러 신앙촌에 갈 때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는 초가집뿐이고 번듯한 양옥이 없었는데 신앙촌에는 깨끗하고 멋진 양옥들이 줄지어 서서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소사신앙촌에 갔을 때 처음으로 안찰을 받게 됐습니다. 앞 사람이 안찰 받을 때 하나님 손이 닿기도 전에 아프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몸부림치면 창피해서 어떡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죄를 일일이 지적하시며 이 죄가 빠져야 한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죄를 소멸해 주시는 능력이 있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배에 살짝 손을 대셨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두 눈에 손을 대시자 얼마나 아픈지 눈알이 쏙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아픔이 차츰 물러가고 시원해질 때 손을 떼셨습니다. 밖으로 걸어 나오자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그렇게 가뿐할 수가 없었고, 좋은 향기가 온몸을 휘휘 감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내 죄를 씻어 주셔서 이렇게 가볍고 좋은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종우 집사님 신앙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