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외교, 사대외교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자주외교’ 노선을 따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외무장관을 교체한 것을 계기로 자주외교니 사대외교니 하는 말들이 회자(膾炙) 되고 있다.
참여정부의 등장에 때 맞추어 한미관계를 자주의 개념으로 재정립하자는 주장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을 두고 ‘굴종외교’, ‘사대외교’라고 매도하였다. 그리고 미국에 맞서 우리의 자존심을 세우고 자주외교를 해야 한다면서 여중생 사망사건을 기회로 반미운동을 전개하고, 이라크 파병을 대미 굴종외교라며 반대했던 것이다. 차제에 외교의 본질은 무엇이며 외교가 국가와 국민의 명운에 얼마나 중차대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우리나라의 가까운 역사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광해군의 ‘자주 외교’와 인조의 ‘사대외교’이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탁월한 양면 외교를 전개하여 후대에 ‘실리외교’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성리학과 사대사상에 사로잡힌 당시의 사대부들은 인조반정을 일으켜 청과 대결을 시도했고 그 결과 한반도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전화를 초래하여 나라와 백성들이 청국군에 유린되고 조선왕조 또한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였다. 실리를 모르는 ‘명분외교’가 나라를 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주외교’이다. 한미관계사에서 가장 자주적이었던 인물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6.25 당시 한국은 초 강대국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지도 못할 정도로 미약하고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그는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하고 단독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등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는 자주외교를 펼쳐 미국을 압박한 끝에 당시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미국 역사상 어떤 나라에도 이렇게 많은 것을 양보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의 한미 방위조약 체결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이 대통령의 ‘자주외교’로 획득한 한미 방위조약은 이 나라를 반세기 동안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으로부터 보호하고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게 하는 근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자주외교’는 과연 무엇인가? 미국과 맞서 실속 없는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것인가? 우리의 안보상황과 경제적 실리를 위하여는 수퍼파워 미국과의 절대적 공조가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현실이다. 우리의 자존심만을 내세우는 어설픈 ‘자주’는 인조 때의 망국적 ‘사대주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모름지기 무엇이 국익을 위한 ‘자주외교’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