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게 해준 ‘신앙촌 소비조합’

신앙체험기 특집
발행일 발행호수 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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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 식품단지 전경

1950년대 6‧25 전쟁이 끝나고 피폐한 상황이었던 그 시절, 신앙촌 소비조합은 신앙촌 기업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며 경제 자립은 물론 올바른 신념을 가진 신앙인의 자세로 고객들에게 신용을 쌓아 왔습니다. 65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신앙촌 소비조합은 그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중 일하는 기쁨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된 신앙촌 소비조합의 이야기들을 모아 신앙체험기 특집으로 엮었습니다.

하나님 일을 할 때 주시는 기쁨을 알게 된 시간
대신동전도관에 같이 다니던 사람들 중에는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선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1958년 아이들과 함께 소사신앙촌에 입주한 저는 주일학교 반사와 합창단을 하면서 신앙촌 물건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장사를 나갈 때는 지리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어 어떡하나 싶었지만, 이웃에 사는 박 권사님과 함께 서울의 여러 동네를 다니며 신앙촌 간장과 메리야스를 팔았습니다. 고객들 집을 다니는 중에 신앙촌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선뜻 선금을 주며 물건을 갖다 달라고 했습니다. ‘신앙촌이라는 말에 이렇게 신뢰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물건을 팔 때마다 왜 그렇게 마음이 기쁜지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단지 물건을 파는 일이 아니라 은혜를 전하는 일이기에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 후 60년대 후반 덕소신앙촌에 입주한 저는 소비조합을 계속했습니다. 아침에 출발하는 소비조합 차를 타고 나가서 늦은 저녁까지 다니며 장사를 했는데, 신앙촌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하루 종일 뛰다시피 다녔습니다. 또 늦은 밤 집에 돌아와서는 당시 한창 바쁘게 돌아가던 제과부에 가서 일을 도운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서너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힘들거나 피곤한 것이 없었고 바쁜 생활 속에 보람이 가득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하나님께서 소비조합들을 모아 놓고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신앙촌 제품을 들고 가면 “안 사요, 안 사!” 하고 거절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하시며, 싫은 소리를 해도 싫어하지 말고 “아 그래요? 그럼 다음에 또 오죠.” 하며 부드럽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이 녹아지게 된다고 하시며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고객들을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집마다 다니는 중에 유독 싫어하고 까다로운 사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며 더욱 친절히 대했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나는 동안 고객과 저는 어린 자식들이 자라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았고 어려운 일 기쁜 일을 같이 넘어왔습니다. 오래된 수첩에 빼곡히 적힌 그분들의 이름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소중한 이웃으로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득선 권사/기장교회

1958년 2월 10일 자 신앙신보에 신앙촌에서 생산되는 제품 광고가 실렸다. ‘서울 장안의 시장을 풍미하는 시온 스타일!’이라는 광고 카피가 눈길을 끈다.

소비조합은 은혜가 담긴 제품을 전하는 일
1962년 소사신앙촌 입구는 들어오고 나가는 소비조합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바쁜 걸음걸이로 물건을 들고 나가는 소비조합들, 밝은 햇살 아래 즐겁게 웃는 얼굴에는 삶의 활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희망하던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촌 간장을 가지고 서울 뚝섬으로 처음 장사를 나갔습니다. 저는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을 꺼내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사람들이 먼저 신앙촌 물건을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촌 간장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그 자리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촌 물건을 반가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간장과 카스텔라를 손에 들고 나가면 그렇게 든든하고 힘이 날 수가 없었고, 먼 거리를 걸어 다녀도 피곤한 것 하나 없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붐비는 버스 안에서 속으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를 때면 제 마음은 기쁨과 평안이 가득했습니다. 아무리 큰 부잣집에 가도, 그 집보다 신앙촌 제품이 더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비조합들을 자주 불러서 안수와 안찰을 해 주셨고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길이 열리게 된다고 하시면서, 고객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기도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단지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겸손하게 대하며 은혜가 담긴 제품을 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제 마음과 몸가짐을 돌아보고 정성껏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장사를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뚝섬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제 뒤에서 “빵, 빵~” 하며 경적 소리가 울렸습니다. 거리에 차가 별로 없어서 ‘저 차가 옆으로 가겠지.’ 하며 걸어갔는데, 차가 가지 않고 또 “빵, 빵~” 하며 경적을 울렸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봤더니 하나님께서 타신 차가 제 뒤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뒷좌석에 앉으신 하나님께서는 제가 있는 쪽을 향해 ‘쉭! 쉭!’ 하시며 축복을 하고 계셨습니다. 순간 들고 있는 물건의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온몸이 가뿐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비조합들에게 항상 축복해 주신다고 하셨던 말씀이 마음 깊이 새겨지며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김옥분 승사/소사신앙촌

신앙촌 소비조합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지내면서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 분들이 제일 부러웠습니다. 매일 아침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며 신앙촌 제품을 부지런히 판매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서 ‘나도 소비조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80년경 친하게 지내던 교인 두 명이 소비조합을 해 보자고 하여 그때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86년에는 신앙촌 제품을 애용하는 고객들을 기장신앙촌으로 초청하여 저도 고객들을 모시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고객들에게 맛있는 식사와 더불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주셨으며 음악당에 모여 하나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창기 천부교 역사와 영원한 천국에 대해 설명하셨는데, 말씀 시간 내내 백합꽃 향기보다 더 향기로운 향취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시작하시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3시간 가까이 향취가 음악당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가 모시고 간 고객 여덟 분은 말씀에 열중하며 마음이 참 편안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30년 넘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습니다. 이영숙 씨라는 보험회사 직원이었는데 그분이 2011년 4월 25일에 이불을 한 채 구입해 본인의 승용차에 싣고 가다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신앙촌 아줌마! 원래 신앙촌 이불에서 향기가 나는 건가요?” 하고 묻기에 어떤 향기가 나느냐고 했더니, 이불을 구입해 차에 실은 뒤로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계속 진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차 안에 향기가 가득 찰 정도로 진동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불에서 그렇게 진한 향기가 날 리가 없는데 은혜를 주셨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한 마음과 은혜가 담긴 제품을 전하는 신앙촌 소비조합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박양순 권사/소사신앙촌

나를 불러 주셔서 이 복을 받게 하시는구나
1960년대인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는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보통 사람들은 ‘미제’라고 하면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물건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국산의 품질이 좋지 못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신앙촌 제품은 미제보다 더 좋다.”는 말을 들을 만큼 품질이 뛰어나 매장에 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곤 했습니다.

그때 소비조합을 했던 저는 제과류를 많이 팔았었는데, 덕소신앙촌에서 캐러멜과 카스텔라를 가득 실은 트럭이 저희 가게로 오면, 아침 일찍부터 가게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상인들이 저마다 많이 가져가려고 아우성을 치곤 했습니다.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는 말 가지고도 부족할 만큼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많은 캐러멜과 카스텔라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장사가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장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며 하루하루를 부지런하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하나라도 쓰는 사람은 그만큼 축복을 받는 것이며 그것이 곧 전도가 된다는 생각에 정성을 다해 판매했습니다. 물건이 팔릴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그 기쁨은 세상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촌 제품이 고객들 사이에 호평을 받고 점점 많이 팔리게 되자 경제적으로도 아주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판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하나님 별을 보면서 ‘나 같은 것을 불러 주셔서 오늘 이 복을 받게 하시는구나.’ 생각하며 남몰래 감사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고객들 집을 찾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동안 많이 느꼈던 것은 고객들이 너무나 따뜻이 맞이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대문에 들어서면 고객이 뛰어나와 “왜 이제 와요?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며 무척 반가워했고 이웃 사람들까지 자기 집에 다 불러서는 제가 가지고 간 신앙촌 물건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소비조합원이 가는 집마다 축복을 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고객들이 은혜를 받아 마음이 열려서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비조합으로 활동한 시간은 저에게 아주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양금준 승사/기장신앙촌

정직하고 바르게 고객들을 대하니 길이 열리는 것을 느껴
1958년 여름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고, 이듬해 저는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에서만 살아 서울 지리를 몰랐던 저는 지리를 잘 아는 박 권사님과 함께 카스텔라를 가지고 남대문시장으로 갔습니다. 당시 신앙촌 카스텔라는 맛이 좋아 최고 인기였는데, 장사 나간 첫날 남대문시장에 자리를 잡고 카스텔라 수십 개를 적당히 잘라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맛을 보게 했습니다. 먹어 본 사람들은 너무 맛있다며 내일 꼭 갖다 달라고 너도 나도 주문을 했습니다. 그다음 날 가지고 간 카스텔라도 순식간에 다 팔리고 카스텔라를 찾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났습니다. 난생처음 해 보는 장사였지만 무척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소비조합들을 부르셔서 말씀해 주셨는데, 언제나 정직하게 사람들을 대할 것을 강조하셨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고객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받은 교육대로 고객들을 대하면 어딜 가나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를 친어머니처럼 생각하며 믿고 의지하는 고객들을 볼 때마다 제가 하나님께 참 바른 교육을 받은 덕분에 이런 신뢰를 받는 구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카스텔라 판매를 시작으로 고객이 점점 늘어나면서 저는 신앙촌에서 생산하는 여러 가지 제품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비조합을 하며 저희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갔습니다. 고향 평창에 있는 큰댁에서는 아들 한 명을 공부시킬 때 논도 팔고 소도 팔아 어렵게 학비를 마련하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소비조합을 해서 2남 2녀 아이들을 모두 대학까지 교육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아이들에게, 내가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기 때문에 너희들을 이만큼 키울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지금 다들 넉넉한 삶을 누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최종성 승사/소사신앙촌

지금도 은혜로 함께해 주심에 감사드려
1961년 저는 가족들과 함께 소사신앙촌으로 입주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집에서 살림만 할 뿐 장사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다른 분들이 소비조합을 하며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을 보니 ‘나도 꼭 소비조합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판매를 나간 첫날 다른 소비조합들을 따라 영등포역에서 내렸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신앙촌 간장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다 어느 주택가로 들어갔더니 “신앙촌 아줌마!” 하며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무척 반가워하며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신앙촌 간장이 왔다면서 이웃과 친구들을 자기 집으로 불렀는데, 그분들이 앞다투어 간장을 사 가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하나도 남지 않고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어라 설명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신앙촌 제품을 먼저 알고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 아주머니는 저에게 “여기 신앙촌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간장도 좋고, 내복, 옷도 좋으니까 전부 갖다줘요.”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도 그곳을 찾아가 여러 가지 제품을 판매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차츰차츰 단골 고객이 늘어났습니다. 어딜 가나 “신앙촌 제품 참 좋지!” 하고 인정을 받으니 신바람 나게 장사를 했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다니며 반가운 고객들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2009년 10월에 덕소신앙촌에서 중부 소비조합 축복일예배를 드릴 때 저는 진한 포도 향기처럼 싱그럽고 좋은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들이 열심히 찬송할 뿐이고 그런 향기가 날 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향취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다시금 감사를 드렸습니다.
조성연 권사/덕소신앙촌

1963년 6월 17일 자 신앙신보에 실린 덕소신앙촌 시온간장 광고. 당시엔 커다란 나무로 된 통에 간장을 담아 전국의 신앙촌 가게에 배달이 되면 빈 통을 가져온 고객들에게 덜어서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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