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영 관장 편 ① 하나님을 깨닫기까지

박혜영 관장편
발행일 발행호수 2311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직분인 학생관장으로서 보람된 일이 많은 중 가장 기쁜 것은 아이들이 하나님이심을 점점 깨달아 표정과 행동이 예뻐지고 말씀을 지키려 스스로 노력할 때이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찾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참 기특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와 반대로 “신은 없기 때문에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였다. 9살 때 쯤 어린이용 성경 창세기편을 읽다가 문득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먹었던 선악과나무를 하나님께서 아예 만드시지 않았다면 죄를 짓지도 않았을 텐데 오히려 하나님이 죄를 짓도록 방치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라고 믿기엔 무책임하다’ 라는 의문이 깊게 자리 잡아 아예 종교에 관심이 없어져 독실한 불교신자이셨던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지도 않았고, 컴퓨터로 무작위 배치되어 기독교여중과 천주교여고를 다녔지만 나를 움직이지는 못했었다.

6년 내내 학교의 종교시간과 전교생 예배시간에 오직 듣는 얘기는 ‘예수의 행적과 보혈’뿐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나 천국이 어떤 세계인지 등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전혀 풀어 주지 못했었다. 그 후 대학에 올라왔는데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30년간 제단을 쉬셨던 아버지께서 1989년 11월에 다시 천부교를 다니시면서 불교신자인 어머니와 남동생까지 전도하시고, 이젠 나에게까지 권유를 하시는 것이었다. 비록 종교는 없다 해도 학교 목사나 수녀에게 들었던 내용과는 정반대 이야기를 하시니 전혀 믿기지 않아 ‘천부교에서는 왜 이 분을 하나님이시라고 하는지, 그리고 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지’에 대해 아버지와 치열하게 토론을 하곤 했다. 그 후에도 궁금증은 많았지만 바르고 인자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차마 거역하고 싶지 않아서 1990년 5월 부천 천부교회를 처음 다니게 되었다.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졸업 후 취업을 하니 제단과 점점 멀어지던 중 1993년 7월 회사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였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려면 다시 제단에 나가야 하는 걸까?’ 하는 마음에 조금씩 예배도 드리며 8월 기장신앙촌에서 열린 여청수련회도 참석하게 되었다.

이 분이 진짜 하나님이시구나
깨달음 다음 어디서 그런 눈물이 쏟아지는지…

나의 인생을 바꾼 1993년 8월 15일. 홍영표 승사님의 ‘돌아가신 어머님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체험담을 듣고는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진실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렇게 우리를 사랑해 주시다니. 이 분이 진짜 하나님이시구나.’ 어디서 그런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지 1시간 내내 울고 또 울었다. 속이 후련해지며 ‘입사, 소비조합, 교역자’의 길이 떠올랐다.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너무나 급해져 나의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바로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길을 가면서도 눈물이 났다. 약 한 달 동안 매일 제단에서 기도를 드리는 중에 교역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고, 너무 염치없지만 받아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공부를 하면서 더욱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썩지 않는 영원한 천국에 가장 먼저 썩는 피로는 구원을 줄 수 없다.’는 말씀으로 ‘예수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나에게 명확히 깨우쳐주셨고, 그토록 궁금했던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들으며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듯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교역자의 길을 가도록 허락해주셨다.

2009년을 정리하며 약 20년 전부터 되돌아보니 감사드릴 일 뿐이다. 구원을 향한 올바른 길에 들었으니 여기에서 그 세계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원하시는 대로 살기를 다짐한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