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파병’과 우리의 대응
장병옥/한국외대 명예교수 정치학 박사대외적으로는 미-이란 양국에 이해를 구하는
외교전략 펼치고 대내적으로는 찬반 논쟁 및
여야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익 우선주의의 스마트한 외교 정책이 절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은 이란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있는 페르시아만 입구의 좁은 해로이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54km다. 이 해협은 세계 석유 경제 대동맥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UAE) 등 여러 아랍 산유국들의 유일한 석유 수출 관문이다. 해협의 북쪽 절반은 이란, 남쪽은 오만과 UAE의 영해로 되어있는데, 대형유조선의 항해는 이란 쪽 영해의 수로를 이용한다. 하루 평균 14척의 유조선이 해협을 통행하면서 1천5백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한다. 우리나라로 수출되는 원유의 8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문제는 이 수로가 호르무즈 해협의 이란 영해를 지나간다는 것이다.
종종 중동지역 정세가 긴장될 때마다 나오는 이란에 의한 호르무즈 봉쇄 위협은 이란 측 영해에서 타국 선박의 통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해협 전체를 막는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란의 자국 영해에 대한 주권 행사라, 국제법으로는 합법적이다. 2019년대 들어서 미-이란 간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해협 인근을 통과하던 유조선들이 피격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5-6월에만 6척의 유조선이 공격당했고 7월에는 영국 유조선이 이란에 나포됐다. 이번 달 10월에는 홍해를 지나던 이란 유조선이 괴 미사일의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유조선 피격사건이 발생하는 등 이 지역 안보 위험이 점차 커지자, 미국이 해협을 이용하는 다른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파병’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까지는 호주,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이스라엘, 영국이 참여하기로 결정한 상태이다. 이미 일본도 자위대 파견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미국이 구상하는 연합체는 미 함선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경계 활동을 펴고, 참가국들이 미 함선과 함께 자국의 민간 선박을 호위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트위터에 “왜 우리가 수년 동안 다른 나라를 위해 페르시아 원유 수송로를 아무 보상 없이 보호하고 있나”라고 썼다. 미국이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큰 한국에 군 연합체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원유 수송로 안전 확보 및 에너지 안보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도 미국 측의 파병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사실상 없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갈등과 북한 비핵화 문제 그리고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 등 미국과의 복잡한 외교 현안에서 호르무즈 ‘파병 카드’를 국익 차원에서 협상 지렛대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파병이 이란과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다. 한국의 파병 자체가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과의 핵합의 탈퇴를 정당화시키고 대이란 압박 작전에 참여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이란 측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국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사실과 북핵 위협에 대응한 한-미 동맹관계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한다. 대외적으로 미-이란 양국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외교전략을, 대내적으로는 ‘파병’을 둘러싼 좌우보혁의 찬반 논쟁 및 여야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익 우선주의의 스마트한 외교정책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