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냄새 진동하고 성신의 바람은 계속 불어와

김병희권사(1) / 덕소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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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1922년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에서 2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농가에서 유복하게 자라 열아홉 살 때 천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시부모님과 남편이 모두 감리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교회에 전혀 다녀 본 적이 없었지만, 시댁의 분위기를 따라 그때부터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장로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려 하면
예배시간 내내 졸리고 목사의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아
자꾸만 전도관에서 예배드리던 생각이 나기만 해

서울로 이사 온 후 영등포 시장에서 포목 장사를 시작하여 고생 끝에 동아상회라는 간판도 걸고 재산을 많이 모았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가게도 불타고 집도 무너져 생활 기반을 전부 잃게 되면서, 전쟁 후에는 겨우 남은 포목을 챙겨 오류동으로 장사를 다니며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55년, 영등포에 살면서 동네에 있는 새마을 장로교회에 다닐 때였습니다. 어느 날 교회 계효연 목사가 “여의도 백사장에서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란 분이 집회(영등포 집회 1955. 4. 27.~5. 6.)를 하는데, 병자들이 낫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나타난다.”라고 하며 참석해 보라는 광고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사를 다니면서 보니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는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화제였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회 마지막 날 저녁 남편과 함께 여의도 백사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집회 장소에는 커다란 천막이 쳐져 있고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솜 타는 냄새같이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무슨 냄새가 이렇게 고약합니까?” 하고 물으니, 죄가 타는 냄새라고 하며 예배를 드리다 보면 그 냄새는 없어지고 좋은 향기가 날 거라고 하였습니다. 집회장 앞쪽에는 목사석이 넓게 마련되어 목사들이 많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는데, 예배를 드리는 도중 그렇게 지독하던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빽빽한 천막 속에 앉아 있어 바람이 느껴질 리가 없는 데도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왔습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밤을 새워 가며 찬송을 불러도 지루하다거나 피곤함이 전혀 없었고, 제 마음속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음 날 새벽, 박태선 장로님께서 나오셔서 안수를 시작하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콩나물시루같이 빼곡히 들어앉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시며 사람들 머리를 탁탁 쳐 주셨는데, 며칠 동안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말이 집회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에 같이 참석했던 남편은 안수를 받는 순간 향기로운 냄새가 맡아졌다고 하였습니다.
안수가 끝난 뒤에 박 장로님께서 “병 나은 사람은 일어나라.” 하시니,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일어나 병이 나았다고 외쳤습니다. 벙어리가 말을 하고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이 정말 제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들은 기뻐 환호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너무나 놀랍고도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갈 때 저는 전쟁 전에 옆집에 살던 종관이 아버지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풍이 들어 꼼짝도 못했는데 이번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여 병이 다 나았다며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난 1957년 봄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웃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박 장로님께서 지금 마포구 청암동에 이만제단을 크게 짓고 있다며 같이 가 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선뜻 아주머니를 따라나서서 일요일 예배를 이만제단에서 드리고 돌아왔는데, 박 장로님께서 힘 있게 설교 말씀 하시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다니던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 시간 내내 졸리기만 하고 목사님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꾸만 전도관에서 예배드리던 생각이 나서, 저는 아주머니를 따라 전도관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때부터 이만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이면 아이를 업고 영등포에서 한강 건너 이만제단까지 한참 걸어가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몸이 둥실 떠서 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만제단에서 예배를 마친 후에는 원효로에 있는 박 장로님 댁에 가서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받아 마시곤 했는데, 집으로 오는 내내 배 속이 시원하면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오래된 지병이 있었습니다. 부농의 딸로 곱게만 자라다가 결혼한 후로 시집살이며 갖은 고생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화병이 생긴 것입니다. 가끔씩 배 속에서 뭉치가 가슴을 치받고 올라오면 너무나 통증이 심해 데굴데굴 구르고 숨도 못 쉴 정도였습니다. 병원도 다녀보고 한의원에도 가 봤지만 별반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전도관에 다닌 후부터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면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러던 1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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