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집회장에 눈송이 같은 것이 펑펑 쏟아져 내려

이숙녀 권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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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공설운동장 집회가 끝난 후에도 박 장로님께서는 대도시에서 집회를 계속하셨습니다. 구덕교회 교인들 중에는 대구와 서울까지 올라가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집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는데 그해 여름에 박 장로님께서 부산에 오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산의 여러 교회에서 박 장로님을 초청하여 순회 집회가 열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집회가 열리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여러 명이 함께 모여서 집회가 열리는 곳으로 신나게 갈 때면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무슨 일이 있어요?”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머리 위로
하얀 눈송이 같은 것이 내려
웬 눈송인가 하고 놀랐는데
‘이슬 같은 은혜’임을 알게 돼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하실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교회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해 창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에 비해 자리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인도하시던 박 장로님께서 단상을 내려치시는 순간 거기서 안개처럼 뽀얀 것이 확 하고 나오더니 사람들한테로 점점 퍼지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밖에 서 있는 사람들 머리 위로 하얀 눈송이 같은 것이 내리는데, 한여름에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뽀얀 안개와 눈송이처럼 내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슬은혜’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56년에는 박 장로님께서 세우시는 ‘전도관’이 대신동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구덕교회에서 열심이던 교인들 수십 명이 전도관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그 일을 아시고 “그동안의 인정을 봐서라도 다니던 교회에 계속 다니지 그렇게 싹 끊어 버리면 어떡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을 사귀려고 교회에 다니는 것이라면 다니던 교회에 계속 나가야겠지요. 하지만 그동안 교회에 열심히 다녔어도 이런 은혜는 못 받아 봤어요. 박 장로님께 가야 은혜를 받을 수 있으니 전도관으로 가는 거지요.” 하고 말씀드리자 아버님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성경에 ‘감람나무’는 이슬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존재라고 기록돼 있는데,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이슬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을 보았고
또 은혜의 향기를 체험하면서
박 장로님이 감람나무이심을 깨닫게 돼

대신동제단에 계속 다니면서 저는 ‘감람나무’에 대한 설교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을 보았고, 은혜의 향기가 진동하는 것을 직접 맡았기 때문에 박 장로님께서 감람나무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성경을 읽었어도 ‘감람나무’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람나무에 대한 구절이 성경에 분명히 있지만 그 구절을 풀어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감람나무께서 이 땅에 나타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성경을 풀어 주시니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신동제단 교인의 어린 아들이 숨을 거두어서 예배를 드렸는데 시신이 아주 곱고 예쁘게 피어서 유리관에 입관하여 제단에 안치해 두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제단에 들어와서 아기의 모습을 보고 천사처럼 예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자 교인 한 분이 “혹시 바닥에 닿았던 등 쪽의 살은 상하지 않았을까요?” 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기의 등을 살펴보니 어느 한군데 상한 곳이 없었고 오히려 살아 있는 아기의 피부처럼 혈색이 감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시신이 피는 것을 처음 보았던 저는 ‘이렇게 예쁘게 피는구나. 살아 있는 아이 같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자
고인의 모습은 보기 좋게 살이 오르고 주름살이 다 펴져
사진 속의 모습보다 훨씬 젊어보여

그 후 어느 여름날에는 교인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입관예배를 드린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집에 가 보니 대청마루에 할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위장병을 오래 앓으셨다는 그분은 몹시 마르고 주름살이 많은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이미 입관을 마친 후여서 저는 교인들과 함께 관 주위에 둘러앉아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참 찬송을 부르는 중에 관 주위로 아주 시원한 바람이 감도는 것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그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아주 향기로운 향취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아!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고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보게 된 고인은 대청마루에 걸려 있던 사진 속의 할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해골에 껍질만 씌웠다고 할 정도로 몹시 말랐던 얼굴에는 보기 좋게 살이 올랐으며 그렇게 자글자글하던 주름살이 다 펴져서 사진 속의 모습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들 정말 잘 피셨다면서 놀라워했습니다.

1957년에는 영주동 산꼭대기에 터를 마련해 제단 건물을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일을 돕는 속에서 저도 직장에서 근무를 마치면 곧장 영주동으로 달려가 건설 일을 도왔습니다. 요즘 같은 건설 장비가 없던 시절이라 질통을 지고 벽돌이며 모래를 날랐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질통을 지고 종각 꼭대기까지 뛰다시피 오르내렸습니다. 한번은 모래를 나를 때 질통이 전혀 무겁지 않아서 모래가 덜 담겼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모래를 담아 주는 사람이 “이렇게 가득 채웠는데도 무겁지 않아요?”라고 해서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귀한 성전을 짓는 곳에서 열심히 일할 때 순간순간 향취가 진동하며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고 마음 또한 한없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부산에 오셔서 주일예배를 인도해 주셨는데, 저는 천국에 관한 말씀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수십 년 예배당에 다녔다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죄를 완전히 벗어 버려야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죄를 회개해야 하고 성신을 받아야 한다. 죄와는 상관없는 성결함을 입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시는 말씀은 제가 어렸을 적부터 장로교회에서 들어왔던 이야기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며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죄를 완전히 벗어 버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이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죄를 회개하고 성신을 받아서 아름다운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이숙녀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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