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운전자론의 역할과 과제
홍현익/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북미간 합의 위해 지혜 발휘하고
정확한 진상 파악이 중요한 시점
양측에 대한 다차원적 접촉과
합리적인 중재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것도 방법
북·미 정상이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담판에서 양측의 판 돈 올리기 끝에 합의를 다음 기회로 연기하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중대 고비를 맞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웃는 얼굴로 헤어졌지만 워낙 합의 타결이 기정사실로 예견되었기 때문에, 양 정상이 서명 없이 헤어진 것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도 방향성과 동력이 흔들리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한민족의 운명이 우리의 자주적인 의지보다 외세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되어온 구한말 이후의 비운의 역사에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 운명은 우리가 주도한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추구했다. 이제나마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고 중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할 뿐 아니라 평화통일을 달성할 때까지도 남북 경협을 진흥해 분단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민족 운명의 자기 주도라는 목표를 세운 것은 다행스럽지만, 주변국들보다 국력이 우월하지 못하므로 매우 조심스럽고 지혜로운 정책을 펼쳐야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북한과 주변 강대국들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지역 평화와 공동 번영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전방위 협력 외교를 전개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후 북한의 연속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간 신뢰와 동맹을 기반으로 남북 화해·협력의 필요성을 설득하면서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유도했고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를 살려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 뒤, 2018년 6월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가동시켰다. 이후 북·미관계가 또다시 경색되자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군사합의서를 체결해 종전선언을 넘는 정도로 한반도 평화를 제도화했고 동창리 사찰과 영변 핵 시설의 조건부 영구 폐기 의사를 얻어내 북·미 간 비핵화와 상응 조치 협상을 다시 한번 추동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전체 핵 프로그램의 중단이나 신고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영변 핵시설만 포기하는 대가로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결의안 중 최근 다섯 개 안의 사실상 폐기에 가까운 다소 무리한 요구를 고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에 영변 핵 시설 전폐와 대북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스몰 딜 합의를 예견하다가 돌연 국내 정치적 사정을 고려해 회담장에서 기존 합의보다 오히려 더 큰 새로운 요구를 주장해 결국 다 된 합의를 무산시켰다.
이에 따라 한반도 평화는 또다시 흔들리게 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켜 오히려 북·미 간에 더 좋은 합의를 이루게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먼저 섣부른 평가보다 북·미 양측의 입장이 어느 부분에서 갈라지고 대립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측에 대한 다차원적 접촉이 필요하다. 양 측이 신뢰하는 특사 파견도 장려된다. 또한 합리적인 중재안을 마련해 양측이 타협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점을 제시하면서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작년 5월처럼 판문점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처럼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평화를 지키며, 남북 간에 지혜롭게 상호 협력하여 분단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 한반도 평화·번영 질서를 구축한다면, 우리 역시 독일처럼 평화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일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