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정교분리
- 2026년 1월 7일자 영국 내셔널 시큘러 소사이어티 키스 포르테우스 우드 기고문 -
법 위에 군림하는 교회와 아동 학대 방치한 국가의 책임 회피
프랑스에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명문화한 1905년 법은 지난해 제정 120주년을 맞았다. 이 법의 이념적 기원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있다. 프랑스 혁명은 공화국 수립을 통해 군주와 귀족, 가톨릭 교회가 누려온 부패와 과도한 권력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를 시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국가의 종교 지원을 금지한 최초의 사례는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주였다. 성공회를 국교로 두고 있던 버지니아주에서 확립된 이 원칙은 이후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의 토대가 되었고, 이후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1789년 혁명 이후, 프랑스 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법제화했지만, ‘최고 존재의 보호 아래에서’라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이는 군주와 성직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타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훗날 교황 비오 10세는 “국가는 교회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이며, 가장 해로운 오류”라며, 이를 “하느님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선언은 1958년 프랑스 헌법의 기초가 되었고, 유엔 세계인권선언과 유럽인권협약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세속주의의 관점에서 프랑스의 정교분리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공식화한 1905년 법조차 왕당파와 반세속주의 세력을 달래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법은 ‘분리’를 선언했지만, 국가가 모든 종교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며, 공공기관에서 종교적 표현을 금지해야 한다는 ‘라이시테(laïcité)’ 원칙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의 정교분리 원칙인 ‘라이시테’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Gemini 생성 AI)
이후에도 가톨릭 사립학교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 등 세속주의 원칙의 훼손은 계속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프랑스 국가가 가톨릭 교회 앞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왔다는 점이다.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연설에서 가톨릭 주교들에게 “교회와 국가의 유대가 훼손된 것을 함께 회복해야 한다”고 말해 세속주의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국가가 가톨릭 교회에 사실상 종속돼 있음을 가장 분명히 보여준 사례는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적 학대 문제였다. 교회 내에서 수십 년간 광범위한 학대가 자행됐다는 방대한 증거가 있음에도, 프랑스 의회는 독립적인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고, 대신 교회가 스스로를 조사하도록 맡겼다.
그 결과 출범한 ‘아동 성적 학대 조사위원회(CIASE)’는 1950년 이후 약 33만 명의 미성년자가 성직자로부터 학대를 당했으며, 실제 피해 건수는 100만 건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왜 가해자나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자들에 대한 기소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2002년부터 2020년까지 리옹 대주교를 지낸 프랑스 가톨릭 최고위 인사였던 필리프 바르바랭 추기경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약 3,000명의 스카우트 단원을 학대한 성직자의 범죄를 알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지만, 검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파기원을 포함한 법원들은 유죄 판결을 뒤집으며, 학대 신고 의무는 교회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있고, 그 적용 시점은 피해자가 ‘정신적으로 온전한 성인’이 된 이후라고 판시했다. 이는 대부분의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학대를 공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프랑스 정부의 태도다. 2021년 프랑스 정부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성직자 아동 학대 문제와 관련해 제기한 질문들을 여러 차례의 상기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외면했다. 이에 위원회는 미성년자를 성직자 학대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프랑스 국가에 공식적으로 물었다.
이 모든 실패는 수십만 명의 무고한 아이들이 교회 내 범죄로 인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삶이 완전히 파괴됐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러한 범죄가 거의 처벌받지 않은 이유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그들의 고통 앞에서 철저히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1789년의 혁명과 1905년의 개혁은 교회가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프랑스에서 교회는 여전히 법 위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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