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내리는 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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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2016년 축복일 전도의 해를 맞아 매월 “신앙촌 초대의 날” 행사가 신앙촌에서 열리고 있다. 이때 천부교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은혜가 내리는 신앙촌”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신앙촌은 은혜받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서 죄를 멀리하므로 더욱 깨끗하게 마음을 씻어 구원의 자격을 이루기 위한 곳으로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이 모여서 사는 신앙촌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1957년 소사신앙촌…구원의 울타리
1957년 부천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43만여 평에 황폐하고 메마른 땅에 300여 동의 주택이 건설되어 만여 명이 거주하게 되었다. 학교와 공공시설이 들어서고 아름다운 신앙인의 마을을 이루게 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빈곤에 허덕이며 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 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신앙촌 안에 기업을 설립해 주셨고 빈곤한 경제 상황에서 외국의 원조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셨다.
소사신앙촌 주택가는 외국인들이 관광차 들르는 명소가 될 정도로 손꼽히는 주거환경이 되었다. 소사를 방문했던 유엔한국재건단 콜터단장과 직원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어떤 위대한 힘에 의한 창조다” 라며 감탄했다.

오만제단이 건설될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는 대규모 집회(1958. 6. 30.~ 7. 5.)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은혜를 간구하는 사람들이 신앙촌으로 모여들었고 연인원 70만 명이 노구산집회에 참석하였다. 노구산집회 때는 불기둥 같은 성신이 내리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슬성신을 내리시는 분이 감람나무이심을 증거해주셨고 사람들은 그 오묘한 말씀을 경청하느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자유율법은 양심을 지키며 맑고 바르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간직하고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 그곳이 바로 신앙촌이다. 자유율법 실현의 본보기로 신앙촌에 주인 없는 상점을 세워주셨다. 아침에 물건을 진열해놓고 저녁에 계산을 맞춰보면 1원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고 한다. 자유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은혜를 받으면 자유율법을 지킬 힘이 생긴다고 하셨다.

1962년 덕소신앙촌…유명인사들 방문
소사에 이어서 1962년 경기도 남양주시에 덕소신앙촌이 건설된다. 불과 100일간 단시일에 현대식 2층 양옥과 아파트 등 주택가가 이룩되었다. 소사신앙촌에 있던 생산공장들이 덕소신앙촌으로 옮겨지고 6천여 명의 교인이 입주했다. 가옥은 당시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한강줄기를 따라 길게 늘어선 주택은 지형적으로 수려한 경관을 이룸으로써 외부에서도 보는 이마다 선망하는 곳이었다. 덕소신앙촌이 건설되면서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신앙촌을 방문하게 되었다. 1963년 한 해 동안만 7만 명 이상이 신앙촌을 내방했다. 조선일보 기자 최은희 씨는 “신앙촌에 가보니 도무지 상상외였어요. 신앙촌은 세계에 자랑할만한 우리나라의 보배예요” 라고 했다. 작곡가 안익태 씨는 “한국에 와서 전부가 절망뿐이었는데 신앙촌에 와서 소망을 발견했습니다. 세계를 다 둘러보아도 신앙촌 같은 곳은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슬성신으로 생명물을 축복하시다
덕소신앙촌 시절부터 하나님께서는 축복일을 정해주셨다. 축복일은 신앙촌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많은 은혜를 허락해주시는 날로 정해주셨다. 지금도 매월 이곳에서는 축복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슬성신이 담긴 생명물은 구원의
진리가 이곳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하나님께서 수돗물을 통에 받아두고 마개를 닫아놓은 후에 모아놓으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셨다. 그러면 일반 수돗물이 생명물이 되는 것이다. 일반물은 며칠이 지나면 썩고 냄새가 나지만 생명물은 변하지 않는다. 또 생명물을 시신의 입에 넣어주면 다 넘어가고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슬성신이 담긴 생명물,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보기 흉한 시신도 아름답게 화하게 하는 생명물은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구원의 진리가 이곳에 있음을 보여주시는 확실한 증거이다.

1970년 기장신앙촌…각종 행사 개최
1970년 2월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장소로 이곳 기장신앙촌을 세워주셨다. 현재의 신앙촌이라고 하면 기장신앙촌을 말한다. 만평이 넘는 건물과 대형 공장 건물, 기숙사가 차례로 세워졌고 당시 봉재공장의 규모는 동양 최대라고 할 만큼 컸다. 1972년, 1973년 수출의 날에는 각각 석탑, 철탑산업 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식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촌이 알려지고 있다. 신앙촌은 그 시대에 앞선 성장을 이루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는 것이다.
신앙촌을 건설하신 가장 큰 이유 역시 은혜를 주시고 그 안에서 생활하며 맑고 깨끗한 자가 되어 구원 얻기를 바라신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촌에 오셔서 은혜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월 축복일 예배를 통해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5월에는 이슬성신절, 11월 추수감사절, 10월에는 3년에 한 번 하는 대규모 체육대회 등이 열린다. 신앙촌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은혜를 직접 보고 체험하는 사람도 많고 아이들도 신앙촌에 오면 기쁘고 즐거워한다.

추수감사절 전날 내린 이슬성신
하나님의 은혜는 빛으로 임하시기도 하고 이 모습은 사진으로 찍히기도 한다. 이 사진을 직접 찍은 장일천 관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장일천 관장은 천부교회 관장으로 30년 동안 전도활동을 하면서 이슬성신이 찍힌 사진으로 하나님을 증거했다. 이만제단 개관집회 때 이슬성신이 폭포수같이 내리는 사진을 비롯해 이슬성신 사진을 소중히 모았고 그 후 기장신앙촌에 부임한 후에도 신앙촌의 발전상을 촬영해 정리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던 1996년 11월 16일 밤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날 저녁은 추수감사절 전야였다. 그때 갑자기 동쪽 대제단 신축부지 위 하늘에 기둥같이 내리 드리운 화려한 50여 개의 빛이 나타났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놀라운 광경은 신앙촌 주민은 물론 추수감사절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7천여 명이 모두 보게 되었다.

이런 모든 현상은 신앙촌에 이슬성신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지금도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신다는 생생한 증거이다.
이슬성신이 하나님의 신인 것은 성경 호세아 14장 5절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곧 하나님께서는 이슬과 같이 임하신다 라고 되어있다. 이슬성신은 죄를 씻어 주시는 최고의 성신이다. 이번 2016 추수감사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에 기쁨과 소망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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